꿈과 환상이 가득한 할리우드… 그곳에서 꽃피운 구찌의 쇼는 팬데믹으로 폐허가 된 도시에서 피어난 희망 같았다
[THE BOUTIQUE 편집장 레터]
그것은 환상도, 꿈도, 영화 속 한 장면도 아니었다. 구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실현한 ‘현실’이었다. 미국 LA 할리우드 거리에서의 런웨이 ‘구찌 러브 퍼레이드(Gucci Love Parade)’ 컬렉션. 배우들로 뒤덮인 거리에서 배우들이 모델처럼 스쳐 지나가는 장면은 분명 패션쇼였다. 하지만 쇼가 끝난 뒤에도 마치 영화 ‘시네마 천국’의 어린 아이 토토처럼 엔딩 크레딧이 언제나오나 기다려야 할 것만 같았다.

할리우드는 언제나 꿈과 환상으로 가득찬 곳이었고, 그런 할리우드에서 꽃 피운 구찌의 쇼는 팬데믹으로 폐허가 된 도시에서 피어난 희망 같았다. 패션쇼를 위해 통제된 구역은 코로나로 인한 단절을 상기시켰고, 그 와중에 할리우드를 밝히는 네온사인이 빛을 내는 동안 모델들의 의상은 차디찬 아스팔트에 다시 온기를 불어넣었다. 모델은 모델 특유의 무표정한 표정이었지만 보는 이들은 알아챘다. 유튜브 등 각종 온라인을 통해 전 세계 동시 스트리밍 된 이번 쇼를 통해 반가운 얼굴이 눈에 띄고, 거리에 앉은 톱스타들을 바라보며 다시 웃음이 시작됐다. 자레드 레토, 매컬리 컬킨 등 익숙한 배우들이 런웨이에 섰고, 빌리 아일리시, 기네스 팰트로, 다코타 존슨, 시에나 밀러 등 할리우드 스타들이 1열을 가득 메웠다. ‘미나리’의 스타 스티븐 연도 눈에 띄었다.
구찌, 미켈레의 팬이라면 어느 정도 짐작했겠지만 할리우드는 미켈레가 오랜 기간 동경해왔던 곳이다. 영화 제작사에서 일했던 어머니를 통해 영화 업계의 반짝이는 이야기들은 듣는 동안 미켈레의 창의성은 무한대로 커졌다. 당시 가족과 함께 로마 교외의 빈집에 몰래 들어가 살고 있던 미켈레에게 그 어두운 시기를 극복하고 꿈을 꿀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 영화 의상 디자이너를 꿈꾸기도 했다. 그는 ‘할리우드(Hollywood)’를 ‘소망의 아홉 글자(nine letters dripping with desire)’로 칭했다.
쇼 뒤에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그는 할리우드를 배경 삼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번 컬렉션은 제 삶과 제 일을 다시 한번 포용하는 작업이었어요. 최근 제 일과 제가 일하는 이 패션 브랜드가 얼마나 영화와 연관되어 있는지를 느꼈어요. 다른 많은 브랜드가 귀족 사회와 부르주아 세계에 뿌리를 두고 있다면 구찌는 제트족과 아티스트, 영화계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죠. 락다운이 끝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 새로 처음으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는 느낌입니다. 다시 시작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고, 가장 사랑하는 곳에서 운명처럼 다시 시작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의 작품은 영화배우들을 그리스 신화 속 영웅과 같은 존재로 바라보는 내러티브를 반영한다. 스스로를 고고학자라고 힘주어 말했던 그의 모든 컬렉션은 과거를 탐구하지만 천착하지 않고 불멸의 아름다움을 발굴해가는 과정이다. 할리우드 의상 디자이너에게 영감을 받아 시상식 의상에서부터 나이트 가운, 길거리 의상, 파티복에서 일상까지 미켈레의 변주는 화려하지만 겸손하고 진취적이지만 허황되지 않다. 그는 이번 쇼가 “명예와 영광, 그리고 고통과 슬픔, 모든 것에 관한 이야기”이자 “그것이 자신의 삶”이라고 말했다. 할리우드는 이를 가장 극적으로, 혹은 미시적으로 표현하는 매개체일 뿐 우리의 일상은 어쩌면 비슷한 굴레에 놓여 있는 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우울한 팬데믹 기간 속 가장 화려한 할리우드에서 자신의 뿌리를 되찾는 작업을 통해 우리에게 “스스로를 점검하고, 안식처를 찾아보라”는 따뜻한 조언을 내미는 것이 아닐까. “팬데믹 기간 동안 삶이 다할 수 있다는 위험에 처했었고, 이를 계기로 삶과 죽음의 경계와 그 연관성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다행히 삶이 끝나지 않았기에 삶을 다시 영위할 수 있고 그렇기에 일을 해야 하며, 일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없이 삶을 살아가게 해주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전보다 감사하는 마음을 더 가지고 살아가고 있어요.” 구찌는 이번 러브 퍼레이드 컬렉션을 기념해, 구찌 이퀼리브리엄의 체인지메이커스 프로그램 일환으로 LA와 할리우드 커뮤니티의 노숙자 및 정신 건강 문제 해결을 위한 후원도 진행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