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의 시간이 만든, 그리고 지금부터의 ‘더 부티크’
[THE BOUTIQUE 편집장 레터]
2021이라는 글자에 익숙해지지도 못한 것 같은데 벌써 11월도 막바지네요. 빠르게 옮기는 발걸음 사이로 서걱대는 낙엽 소리에 가을이 온 건가 했더니, 나가보니 이미 겨울입니다. 대책 없이 세월만 지나는 것 같아 가끔은 시간이 미워질 때도 있지만, 매달 쌓여가는 ‘더부티크’ 섹션 페이지를 보고 있으면 어느새 훈훈해집니다. 지면을 만들며 함께 이야기하고 아이디어를 나눈 이들, 또 생애 한번 만날까 말까 한 세계적인 아티스트나 글로벌 CEO와 대화하고 감탄하고 배웠던 시간을 생각하면 단 한 순간도 ‘그냥’ 보낸 건 없는 데 말이죠. 입버릇처럼 ‘한 게 뭐 있나’고 내뱉었던 것을 고쳐보려고도 합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단 하나의 제품을 내놓는다더라도 그 뒤엔 수 많은 장인들이 들인 시간과 공헌, 그 외에도 전 세계 퍼진 직원들의 생계까지 좌우될 수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요즘 같은 ‘연결사회’에 모든 일은 연쇄적으로 이어진다는 느낌이거든요.
얼마 전 우산도 감당못할 갑작스런 폭우에 찬 바람까지 휘몰아친 날이 있습니다. 발을 동동대며 취재를 마치고 가장 가까운 ‘피신처’였던 지하철 편의점을 찾았죠. 머리카락은 비바람에 뻗쳐 있지, 쌩쌩 대는 자동차 바퀴에 물벼락까지 튄 터라 편의점 사장님도 측은해 보였나 봅니다. 따뜻한 음료는 밖에 있다고 묻지도 않았는데 가르쳐주시더군요. 몸도 으슬해 1+1행사용 쌍화탕을 양손에 쥐었는데 그 순간만큼은 쌍화탕의 금색 뚜껑이 금덩이로 보이는 듯했습니다.
쌍화탕을 들고 기세등등하게 편의점을 걸어나오는 제 모습이 지하철 벽 거울에 비치더이다. 순간 패션 해외 취재를 나갔던 십수 년 전과 겹치더군요. 컴퓨터라는 ‘황금 무기’를 들고 어깨 당당히 고개 들고 있었지만, 외지인들이 보기엔 그저 초라한 행인이랄까요. 명함이 주는 자부심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국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많은 독자를 보유한 신문이라는 설명을 곁들이곤 하죠. 하지만 당시만 해도 일간지에서 패션쇼를 취재한다는 건 거의 드물었었죠. 좋게 말하자면 ‘개척’이고 업계 입장에서 보자면 불청객이었을 수도 있고요. 보그나 엘르 같은 해외에서 잘 알려진 라이선스 매거진은 현지인들과 브랜드 관계자에게 익숙해도 ‘조선’이란 이름에 대해선 갸우뚱했던 것이죠. ‘한국의 뉴욕타임스’ ‘프랑스의 르몽드’ 같은 설명으로 현지 본사를 설득하며 얼마나 뛰었는지 모릅니다. 아무리 그래도 현장에 가보면 패션쇼 자리는커녕 들어가는 패스도 받기 어렵더군요. 어쩌다 들어가기라도 하면 앉는 자리도 없어 맨뒤에 서서 까치발을 들고 짧은 목을 최대한 길게 빼 어떻게라도 보려고 노력했던 게 기억납니다. 밀라노와 파리 등 쇼를 위해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쇼에 늦지 않으려 세차게 뛰어다녀 의도치 않게 건강해진 기억도 있습니다. 평소 기지개가 최고의 운동 수준이었던 제가 그 덕분인지 몇해 전 뉴욕에선 길거리에서 “어디 짐(gym)을 다니느냐면서 다리 근육이 아주 탄탄하게 붙었다”고 현지 피트니스 센터 직원에게 헌팅아닌 헌팅(?)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신청해서 최종 허락을 받는 데 4년이 걸린 적도 있었죠. 제가 인터뷰했던 이들 목록은 기본, 질문지 수준까지 평가 받기도 했습니다. 지금이요? ‘조선?’이라며 눈도 잘 마주치지도 않았던 이들이 요즘은 ‘조선’을 먼저 꺼낸다고 이야기합니다. 까치발을 들었던 그때와 달리 이젠 ‘안나 윈투어’급은 아니더라도 당당히 ‘프론트 로(1열·front row)’를 배정받습니다. 해외 본사 분들은 제게 BTS, 블랙핑크, 엑소 같은 K팝 스타와 ‘사랑의 불시착’ ‘오징어게임’ 같은 K드라마를 이야기를 줄줄 외며 거꾸로 말을 걸어오기도 합니다. 한국 문화 콘텐츠의 성장만큼 해외 시장에서도 ‘조선’ 콘텐츠의 위상이 함께 올라간 듯한 기분입니다.
이번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글로벌 앰버서더가 된 레드벨벳 슬기의 그간 인터뷰와 활동 모습을 페라가모와 비교해 되짚어보다 보니 그녀에게도 빛나기 전 오랜 기간 스스로를 연마하는 시간이 있었지요. ‘오징어게임’ 역시 10년을 외면받던 각본이 드디어 ‘때’를 만나 세계무대를 점령했습지요. 저도 ‘더부티크’의 단단한 벽돌을 쌓는 데 도움이 좀 된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게 다 독자분들이 계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겠죠. 좋은 말씀, 따끔한 지적 해주시는 분들 덕분에 인터뷰 준비할 때마다 외신 수천장을 읽고 온갖 자료를 수집한 뒤 현장 취재를 더해 다양한 분야 지식을 녹이려 노력했으니까요. 이번 독자 사연을 보내주신 ‘한영’님의 짧은 글 속에 인생을 녹여낸 필격(筆格)을 다시 배워야 겠다고 고개 숙였습니다. 그간의 시간으로 오늘의 ‘더부티크’가 탄생했다면, 이제 더 올라간 위상과 더불어 독자분들의 에너지까지 합쳐 더 나아진 고품격의 ‘더 부티크’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