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상 가장 찬란했던 황금기로 꼽히는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 세계를 암흑으로 치닫게 했던 1차대전과 스페인 독감이 사라진 뒤, 미국식 자본주의와 소비문화가 꽃피었던 1920대를 말한다. 호황 속에 문화와 예술이 만개했다. 자유분방한 재즈가 곳곳에 흐르며 파티는 끊이지 않았다. 혁신도 그 중심에 있었다. 포드 자동차의 대량 생산으로 소수의 전유물이던 자동차가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이 시대적 흐름을 짚어내며 주목할 만한 ‘작품’을 내놓은 건 지구 반대편에 있는 스위스 고급 시계 브랜드 바쉐론 콘스탄틴이었다.

정확히 100년 전인 1921년 바쉐론 콘스탄틴은 미국 시장을 겨냥해 기존에 보지 못했던 디자인의 시계를 선보였다. 쿠션형 케이스에, 대각선 방향의 디스플레이, (보통 시계라면)1시와 2시 사이에 위치한 크라운 등 마치 다이얼(문자판)을 일부러 돌려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일반적인 시계가 시계줄(스트랩)과 12시 6시 방향, 로고가 일자로 연결되는 데 반해 비딱하게 설계돼 있다. 마치 일부러 고개를 꺾어야 제대로 시간을 읽을 수 있게 해놓은 것처럼 말이다.
팔다리를 위아래 양옆으로 발랄하게 흔들던 1920년대 찰스턴 댄스라도 추는 듯, 그 당시 넘치는 흥을 다이얼에 옮겨놓은 건가 싶기도 하다. 대담하면서도 관례를 뒤집는 것이 그 당시 문화적 사조였기 때문이다. 도전적인 디자인은 환영받기 충분했다. 특히 전통적인 포켓 워치가 손목시계로 대체되던 시기에, 무브먼트 소형화 기술은 메종이 폭발적인 창의성을 발휘하는 계기도 됐다. 모든 종류의 상상력이 손목 위에서 춤을 췄고, 바쉐론 콘스탄틴은 ‘Classic with a Twist’라는 테마를 내걸고 독창적인 디자인을 선보였다.
고개를 갸웃하게 할 만큼 생경하고, 또 흥미를 자아내기도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더욱 깊은 뜻을 알 수 있다. 이 시계 하나로 그 당시 젊은이의 상징이 된 ‘자동차 문화’까지 읽어낼 수 있었다. 자동차 운전을 하면서 운전자가 인덱스(숫자)를 쉽게 읽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운전자라면 바로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자동차 핸들을 움직이다 보면 손목이 아닌 손가락 쪽을 향해 12시 방향 숫자가 있어야 전체적인 문자판이 한눈에 들어온다는 것을. 운전대에서 손을 떼지 않아도 시간을 빠르게 볼 수 있게 됐다. 운전자의 시선에서 최적화된 디자인을 만들어 낸 것이다.

‘아메리칸 1921’ 100주년을 맞아 그 당시 미학을 재현한 ‘히스토릭 아메리칸 1921’ 시리즈를 선보였다. 빈티지 마니아들 사이에선 이미 입소문 났다. ‘화이트 골드’는 직경 40mm 사이즈와 36.5mm로 선보인다. 18K 화이트 골드 케이스로 극도로 간결한 다이얼에는 블랙 컬러로 페인팅 된 미닛 트랙과 더불어 블랙 컬러의 18K 골드 브레게 타입 핸즈와 세컨즈 카운터에 탑재된 바톤 타입 핸즈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1928년 설립된 밀라노 기반의 이탈리아 가죽 제품 회사인 세라피안(Serapian) 워크샵에서 제작된 스트랩으로 고급스러움을 더했다. 40mm엔 브라운 컬러의 카프 레더 스트랩을, 36.5mm의 경우 파티나 기법을 적용한 다크 브라운 및 버건디 가죽 스트랩으로 선보인다.
‘히스토릭 아메리칸 1921 엑설런스 플래타인 컬렉션’은 전체 950 플래티넘으로 제작됐다. 바쉐론 콘스탄틴 부틱에서만 구매 가능한 이 제품은 100피스 한정판으로 개별 번호가 부여됐다. 40mm. 샌드 블라스트 마감 처리된 950 플래티넘 다이얼에는 전통적인 시계 디자인을 연상시키는 18K 화이트 골드 아워 마커와 미닛 트랙이 장식돼 있다. 플래티넘과 같은 변경이 불가능한 소재로 제작된 다이얼의 경우, 샌드 블라스트 마감 기법을 적용하는 것이 특히 까다롭기 때문에 희귀할 수밖에 없다. 다크 블루 컬러의 엘리게이터 레더 스트랩은 플래티넘과 실크 원사 스티치로 우아하게 장식됐다. 역시 65시간 파워리저브. ‘히스토릭 아메리칸 1921’ 3가지 시리즈 모두 인하우스 매뉴얼 와인딩 무브먼트인 칼리버 4400 AS 로 구동된다.
‘아메리칸 1921 유니크 피스’는 유구한 유산을 복원하려는 메종의 집요함이 담긴 결실이다. 그 당시 레퍼런스 1921은 단 24피스만 제작됐는데 오늘날 하나만 바쉐론 콘스탄틴의 프라이빗 컬렉션에 포함돼 수십가들과 애호가들의 애정 공세를 받고 있다. 이를 그대로 재현한다는 아이디어가 구체화 되면서 메종이 보유한 기술과 예술적 노하우가 하나가 됐다.
1755년 설립된 바쉐론 콘스탄틴의 장인정신과 예술성을 집결한 헤리티지 부서는 800개의 기계와 작업 공간 및 도구, 상당한 양의 문서와 도상학 아카이브를 보유하고 있다. 해외 판매, 관련 업체, 공급자와 고객 간의 서신, 다양한 문서와 사진으로 구성된 수많은 양의 생산 및 회계 기록물들이 420m에 이른다고 한다.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1년간 메종의 복원 전문가들이 역사학자의 관점에서 과학적으로 분석해내면서 아주 작은 요소까지 완벽하게 재현해내는 윤리적인 접근 방식을 취했다. 역사적인 작업 도구를 사용하는 것도 물론이었다. 19세기 후반의 정면 선반(facing lathe)을 사용해 케이스 구성 요소를 충실하게 재현했고, 19세기 후반의 라운딩 업(토핑) 도구는 휠의 톱니 모양을 수정하고 직경을 조정하는 데 사용했다. 워치메이커는 18세기의 수직 드릴링 액세서리를 사용하여 무브먼트 메인 플레이트에 구멍을 뚫었다. 보석을 세팅하기 위해 20세기 초반의 스테이킹 도구를 복원하기도 했다.

부품을 완성하는 것도 도전 자체가 역작이었다. 오리지널 무브먼트 115개 부품 크기를 측정해 정교하게 사이즈를 계산했다. 그동안 손상된 주얼을 교체하는 건 많았어도 주얼을 직접 세팅하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에 스톤에 맞는 정확한 깊이로 금속을 파내는 작업을 위해 100번에 가까운 시도를 거쳤다. 복원 워크숍 재고에서 일부 부품을 사용할 수 있었고, 31.5mm케이스를 시작으로 다른 부품은 완전히 새로 제작했다. 케이스는 역사적인 모델 (18K 3N 옐로우 골드)에 사용된 특별한 골드 합금으로 복원 워크숍의 금세공 장인이 제작했고, 정확한 컬러를 재현하기 위해 분광계(빛을 파장에 따라 나누어 스펙트럼으로 만드는 장치)까지 이용했다. 워치메이킹 장식 분야에서 가장 섬세한 기술로 여겨지는 고대 기법인 그랑 푀 에나멜로 제작된 다이얼은 가마 속에서 800°C가 넘는 온도로 여러 번 구워 완성했다. 커스텀을 위해 케이스백에 레이저로 인그레이빙한 것만이 아메리칸 1921 유니크 피스와 오리지널 모델을 구별할 수 있는 징표다.
/최보윤 문화부 차장·더부티크 편집장
☞바쉐론 콘스탄틴의 ‘히스토릭 아메리칸 1921’ 제품 실물을 유튜브에서도 확인하세요! 최보윤 더부티크 편집장이 브랜드 이야기와 제품 속속들이 설명하는 코너를 지면은 물론, 유튜브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