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르셀 반더스 & 가브리엘 치아베 인터뷰
이 사람은 태생부터 우리를 경이의 세계로 인도하려 운명지어졌나 보다. 네덜란드 출신으로 인테리어, 건축, 가구, 공간 디자인, 산업 디자인 등을 아우르며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한 세계적인 디자이너 마르셀 반더스(Wanders·58). 그의 작품을 보다 보면 복잡한 요소로 가득한데도 극도로 간결해 보이거나, 고도의 기계로 작업한 듯 너무나 화려해 보이는데 사람의 손을 일일이 거쳐 이룩해낸 장인정신의 수고로움으로 가득차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존에 보지 못했던 재료는 물론, 이전에는 사용하지 않았을 장소에,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순간에 마주하는 작품의 경이로움(wonder)은 그의 천재성과 유머 가득한 상상력의 공간을 한창 거닐다(wander) 오게 한다. 아라미드와 탄소섬유로 된 끈을 매듭지어 의자를 탄생시킨 ‘매듭 의자’나 콘돔 속에 삶은 달걀을 넣어 만든 틀을 조합해 형태적 변이를 꾀하는 ‘달걀 꽃병’ 같이 ‘예상치 못한 환대(The Unexpected Welcome)’를 자아내게 한다. 멀리서 봐도 놀랍지만, 마치 해부학 실험을 하는 듯 자세히 보면 볼수록 더욱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니 말이다.

네덜란드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마르셀 반더스 스튜디오를 이끄는 그는 루이비통, 바카라, 비사자(Bisazza·타일 브랜드), KLM 항공, 하얏트 호텔, 라문, 크리스토플, 알레시 등 세계적인 기업들과 일하며 제품부터 건축, 공간디자인까지 선보이며 끊임없는 창의력과 넘치는 에너지를 과시했다. 또 지난 2010년부터 고급 화장품 브랜드 데코르테의 아트 디렉터를 맡아 패키지부터 매장 공간 디자인까지 ‘미(美)’에 대한 그만의 접근 방식을 선사했다.
언제나 선물 같은 디자인으로 전 세계 사람들을 축하하고 싶다는 그는 데코르테 50주년을 맞아 화장품사(史) 또 다른 미학을 선물했다. 데코르테와 프랑스 고급 크리스털 브랜드 바카라와의 협업을 통해 선보인 ‘AQ 밀리오리티 인텐시브 크림 바카라 에디션’을 통해서다. 바카라 상징인 레드 옥타곤(팔각의 붉은 장식) 장식부터 바카라 마니아들은 이미 설렜다. 또 그가 이전에 바카라와 협업해 선보인 ' 르아 솔레이유 샹들리에'에서 보던 화려한 공예 기술로 스탠드형 화장품 패키지를 제작했다. 그 자체로도 충분히 장식적이지만, 안에 들어 있는 화장품의 가치를 극대화하는데 이보다 더 화려한 장치는 없어 보인다.
이번 작품 세계에 좀 더 다가가기 위해 디자이너 마르셀 반더스를 비롯해 그의 스튜디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가브리엘 치아베를 줌(Zoom)으로 만났다. 은발에 더욱 빛나는 푸른 눈동자가 흰 셔츠와 너무나도 잘 어울려 마치 지중해 한 가운데 있는 듯한 기분을 자아내게 한 반더스와, 평소 재단이 잘된 검은 슈트를 능수능란하게 소화하는 치아베 이날 역시 검은색 터틀넥으로 반더스와 대조되는 색감을 전달했다. 치아베는 외교관 부모님을 따라 유럽에서 중동, 아프리카 등 전 세계를 다니며 익힌 다양한 시각으로 기능과 형태, 소재 등에 경계 없는 시도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탈리아에서 디자인 공부를 한 뒤 여러 스튜디오 작업을 거쳐 지난 2007년부터 마르셀 반더스 스튜디오에 합류한 치아베는 고전적인 수공예부터 첨단 기술을 이용한 3차원 디자인까지 다층적인 관점을 통해 현대성을 재해석하고 이탈리아 산업 디자인에 녹아있던 특유의 유머를 작품에 수혈했다.




화려하지만 과하지 않은 절제미와 균형감이 돋보이는 이번 에디션을 보면서 그들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이란 무언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보다도 미학을 꿰뚫어보는 마르셀 반더스는 수많은 용어 중 ‘신뢰’와 ‘내구성’을 내 걸었다. 언뜻 연결되지 않는 듯하지만 그의 작품을 보면 너무나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단어들이다. “재밌는 사실은 오늘 흥미로웠던 것이 내일 흥미로울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어요. 그렇기에 영속성과 품질이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작품 자체도 극도로 럭셔리해서 저는 이를 ‘생경한 럭셔리(alien luxury)’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변치않는 아름다움에 대한 갈구. 수천년간 이어온 인간의 욕망 중 하나일 것이다. 화장품으로서도 마찬가지다. 자연스레 나이듦을 받아들여야겠지만, 최대한 ‘지금’을 누리며 보존하고 관리하려는 것이다. 그 본성과 본능을 반더스는 ‘영속성’이라는 키워드로 읽어냈다. 쓰고 버리는 패키지가 아니라 화장대든 침대 옆이든, 장식장이든 어디든 오래 함께할 수 있는 ‘작품’을 선사했다. 치아베는 역시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몇 세기 동안 남을 명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크림이 담겨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누군가는 여기에 귀걸이를 넣고, 사탕을 넣을 수도 있어요. 200년 후에는 우리 후손이 달이나 화성에서 이 패키지를 사용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는 여기에 ‘가족’이라는 단어를 추가했다. 데코르테와 11년 협업해온 이력으로 서로가 원하는 지점에 도달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사랑과 신뢰가 아름다움을 구성하는 궁극적 요소란 이야기였다. 제품을 만든 사람의 관점이긴 하지만 화장품을 사용하는 입장에서 되풀어 말하면, 그 품질을 믿고 쓴다는 사랑과 신뢰가 결국 아름다움을 완성해 낸다는 해석이다.
반더스·치아베 듀오의 이러한 세계관은 작품 속에 ‘인간성(humanism)’이란 맥락을 함의한다. 바우하우스를 시작으로, 극단적인 절제를 강조하는 미니멀리즘 같은 포스트 모더니즘이 지배한 현대 주류 디자인 시장에 반기를 든 것이다. 마르셀 반더스는 과거 “난 미니멀리스트도, 맥시멀리스트도 아닌 최적주의자(optimalist)”라고 말하기도 했다. “미니멀리즘은 대체로 이성을 기반으로 도출된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정신세계를 보면 이성만이 지배합니까? 아닙니다. 크리스마스트리를 왜 좋아합니까? 비 오는 날 왜 비를 맞고 싶어하나요? 이성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죠. 인간의 가장 큰 가치는 서로 연결되는 인간애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디자인 역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물론 지능적인 디자인도 하지요. 그러나 과시하지 않습니다.”

디자인에 인간미를 심어놓는 것에 대해 이들은 ‘선물’을 예로 들었다. 좋은 선물엔 두 가지 유행이 있는데 하나는 상대의 마음을 파악한 선물, 또 다른 것은 상대가 주는 이의 마음을 파악한 선물을 말했다. “선물을 줄 때 “이거 갖고 싶었는데, 어떻게 알았어?” 라는 반응과, “이건 너만 줄 수 있는 선물이야” 라는 반응 두 가지를 말합니다. 전자의 경우에는 ‘내가 너를 잘 안다’는 의미가 되고, 후자는 “너도 나를 잘 안다”는 뜻이지요. 우리 스튜디오의 작품 역시 두 가지를 충족하자는 관점에서 제작합니다.” 고객과 또 사용하는 이들이 마치 꿈에 그리던 ‘선물’을 받는 것 같은 기쁨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튤립과 달리아 의자는 꽃봉우리 모양으로 제작해 마치 사람이 꽃망울 속에 들어 있는 모습으로 형상화된다. 공간을 장식하는 한편 앉는 사람까지도 하나의 작품화 시켜버리는 것이다. 전 세계를 다니며 다양성을 몸에 익힌 치아베는 “작품 속에 여러 가지 문화를 녹인다”면서 “전 세계 사람에게 닿고 싶은 열망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들의 작품을 보다 보면 세계 여행을 하는 듯하다. 동양적인 세계관을 닮았는가 하면 중동의 장식인 듯 하고, 또 중세 르네상스를 거쳐 환상적인 로코코 양식 한가운데 두더니 어느새 22세기 미래적인 느낌으로 변환한다.
디자인은 결국 ‘사랑’에서 출발한다고 강조하던 이들은 그 어떤 디자인 모토보다도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해지는, 대를 이어서도 가치 있는 디자인을 구현하고 실현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마르셀 반더스가 말한다. “사실 디자인은 비싸지 않아요. 이렇게 당신이 지면을 보면서 즐길 수 있는 디자인은 공짜잖아요! 다양한 아이디어나 우리가 함께 공유할 내일의 모습을 보여주는 디자인도 무료에요. 오로지 소유만이 비쌉니다. 수백만가지 소파 디자인을 보지만, 일상에서 필요한 소파는 몇 개인가요? 한개면 되죠. 그 외 디자인을 보는 건 무료에다. 그래서 나는 내 직업이 너무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