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화에, 부츠에, 가방에, 옷에, 그리고 당신 마음에… ‘별’을 새기다
입력 2021.04.23 09:58

브랜드 창립 20주년 패션 브랜드 골든구스 실비오 캄파라 CEO 인터뷰
그 운동화는 어떻게 세계 패션계의 ‘황금알’이 되었나

골든구스가 새롭게 내놓은 스타백. 편안하면서도 도시적인 디자인이다. /골든구스 제공
이 글은 어쩌면 러브레터다.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것을 두고 애정이 발현되는 여로(旅路)로 본다면 더욱 그렇다. 브랜드 창립 20주년 맞이 인터뷰를 기획하며 들춰봤던 이야기들이 브랜드에 대한 이 같은 호기심과 열망으로 바뀌게 될 거라곤 처음엔 예상하지 못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옷 좀 입는다’는 사람들 입에서 ‘골든구스’란 단어가 쉼 없이 튀어나왔고, 새 운동화를 일부러 다 떨어지고 오래된 듯 보이게 하는 만듦새에 열광하는 마니아층이 형성되면서, 외신을 장식하는 ‘컬트(cult) 브랜드’란 문구에 솔깃했었다. 아니 좀 더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수년 전 고급 브랜드 하이힐을 챙겨 신은 발뒤꿈치가 다 까져 길거리에서 ‘예뻐 보이는’ ‘싸구려’ 운동화를 대충 급히 사서 바꿔 신었던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걸 신고 좋다고 여기저기 다녔었는데 알고 보니 ‘골든구스’ 짝퉁이었다는 것을 알고는 어찌나 부끄러웠던지…. ‘골든구스’와의 인연은 새빨개진 얼굴로 ‘GGDB(’골든구스 디럭스 브랜드'의 약자) 이건 다시는 안 봐!’라는 마음과 ‘GGDB가 대체 무어기에 이렇게 사람들이 열광할까’라는 마음으로 양분된 데서부터 시작했던 것 같다.
2018년부터 골든구스 CEO를 맡은 실비오 캄파라 by Giovanni Gastel. /골든구스 제공
어느새 잊고 있었던 과거가 새삼 떠오른 건 지난 2000년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탄생한 럭셔리 패션 브랜드 골든구스의 CEO 실비오 캄파라(41)를 줌(zoom)으로 만난 직후였다. ‘성공 비결이 무어냐’고 대뜸 묻는 질문에 그는 한껏 여유로운 미소를 띠며 말을 이었다. “최근 6개월 사이 트렌드가 아닌, 10년 넘게 일궈진 골든구스 특유의 문화와 일관성, 공동체 같은 특질을 꼽을 수 있겠죠. 하지만 무엇보다 20년간 한결같이 이어온 것은 ‘친절함’입니다. 사소한 것도 지나치지 않고, 긍정적인 자세로 친절하게 귀를 기울이는 것. 이러한 태도가 무엇보다 쿨(cool)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로 다른 가치관과 지향점도 열린 마음으로 뭐든지 받아들이려 하는 포용성이 골든구스엔 살아있었다는 얘기였다. 패션계에 잔뼈가 굵었던 그가 2013년 이 회사에 둥지를 틀고는 창업자인 알레산드로 갈로와 프란체스카 리날도를 만났을 때 느낌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했다. “이전의 여럿 회사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었죠. 자신이 속한 브랜드와 그 제품을 사랑하는 건 물론 마찬가지였지만, 우리가 긍정적인 미래를 위해 함께 나아가자는 독특한 가치를 느껴보긴 이곳이 처음입니다.”
공유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마치 한 가족처럼 품어주는 조직 분위기는 패션계를 넘어 일반 회사에서도 찾기 힘들지도 모른다. ‘어제의 패션의 외면받는다’며 치열한 경쟁 속에 누군가는 짓밟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날선 패션계에서 외롭게 살아가야 하는 이들을 위해 ‘골든구스’는 단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라 너른 깃털만큼 그들을 품어줄 따뜻하고 안락한 둥지였을 수도 있다. 마음을 두고 품을 둥지가 생기고 나니 자연스레 ‘황금알’도 따라온 듯 싶었다.
골든구스 20주년을 기념해 발간한 책자. 전세계 직원들의 사인을 표지에 담았다. /골든구스 제공
캄파라 CEO역시 이러한 ‘품’을 강조하는 듯싶었다. 1시간 정도 이어진 인터뷰 내내 ‘사람’을 강조했다. “단기적인 이윤이나 얕은 야망에 휘둘릴 수도 있지만 그건 조직을 건강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저는, 또 우리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회사를 바라봅니다.” 20주년을 기념해 발간한 책자 표지에 직원들 사인으로 가득 채운 건 패션브랜드 중 골든구스가 처음일 것이다. 록밴드 오아시스의 맴버 노엘 갤러거,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 NFL스타 디안드레 홉킨스 등 골든구스 마니아들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삶을 담은 이야기도 함께 꾸며져 있었다. “누구나 스타가 될 수 있다(it’s Everyone Can be a Star)”라는 골든구스의 캐치프레이즈를 굳이 달고 오지 않아도, 골든구스를 사랑하고 응원하는 이들은 이미 서로가 서로에게 ‘별’이 돼 있었다.
사실 20년이란 세월은 적지 않아 보이지만, 어쩌면 유구한 헤리티지(heritage·유산)를 중시하는 럭셔리 패션계에선 ‘신생아’급이다. 짧은 기간에 급부상하는 패션 브랜드가 간혹 있긴 하지만, 골든구스처럼 20년 만에 글로벌 명성을 지니게 된 토털 패션브랜드는 많지 않을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가죽으로 유명한 베니스답게 가죽 재킷과 부츠 등으로 시작했던 소규모 회사가 스니커즈(운동화)로 명성을 얻기 시작해, 이젠 패션사(史)에 ‘이탈리아 고급 운동화’ 트렌드를 새겨놓았다. ‘콜럼버스의 달걀’처럼 모든 위대한 발명은 ‘왜’라는 단순해 보이지만 어쩌면 심오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골든구스도 마찬가지다. ‘이탈리아 수제화 같이 이탈리아에서 손수 제작하는 운동화 브랜드는 왜 없을까’였다. 실크로드가 아시아와 유럽, 신대륙과의 문명 교역의 통로가 된 것처럼, ‘황금알’을 낳는 골든구스(황금거위)의 항로는 동유럽이나 아시아에서 제작하던 운동화를 이탈리아 수제 공방으로 옮겨놓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2007년 ‘슈퍼-스타’를 내놓아 성공시킨 골든구스의 시도 이후 여타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들이 스니커즈를 이탈리아에서 제작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골든구스가 가는 곳이 곧 길이 된 것이다. 13세기 이탈리아 슈즈 장인들이 ‘길드’(동업자조합)를 만들 정도로 뿌리깊은 곳인 베니스의 역사를 갓 20년 된 골든구스에 주입한 것도 캄파라 CEO의 역할이 컸다.
고객들이 직접 꾸미는 골든구스 SS21 '드림메이커' 사진. 골든구스는 지난해 서울 도산공원 초입에 '랩(LAB)' 플래그십을 세워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로 제작해 볼 수 있다. /골든구스 제공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골든구스 종교’같다는 느낌마저도 든다. 골든구스라는 브랜드에 대한 자기 확신이 그만큼 강했고, 신기하게도 그 믿음에 따라 이뤄졌고, 이뤄내기도 했다. 캄파라가 이 회사에 투자자이자 상무이사(Commercial Officer)로 오게 된 건 운동화 시장에 대한, 그중에서도 특히 골든구스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점점 편하면서도 스타일리시한 제품을 찾는다는 취향을 발견하게 된 그는 골든구스에 그저 입사한 게 아니다. 자신의 자본을 투자했다. 어쩌면 인생과 돈 두 가지 모두를 건 ‘도박’일 수도 있다. 2013년 단 17명의 종업원으로 2000만유로(268억원) 매출 규모의 회사에 들어온 그는 주변에게 “날 믿어라” “이 회사는 분명 머지않아 10억 유로(1조 3460억원)의 가치로 떠오를 것”이라고 말했다고 했다. “잠재력을 믿었습니다. 이러한 문화와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장인정신을 잃지 않고 그 가치를 높이 사는 패션계에서 극히 드물거든요. (M&A 등으로 가치가 훼손될까 우려하는) 일부에겐, 거대 회사가 돼도 골든구스는 분명 특별한 위치를 점하는 틈새(niche) 브랜드로 남아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지요. 우리의 가치는 몸집을 불리고 이윤을 내는데 매몰된 게 아니라 사회에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회사가 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창업자들의 사랑으로 시작된 여정처럼, 우리를 사랑하는 이들이 함께 서로를 기념하고 행복해하며 삶을 더욱 충만하고 축복되게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요.”
그의 말대로 이 회사는 그가 입사한 뒤 매년 40~50% 성장세를 보이며 전 세계 800여명 종업원 규모에, 30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회사가 됐다. 지난해엔 세계적인 투자그룹 퍼미라에 1조 3000억원대 규모로 매각됐다. 캄파라의 이야기가 마치 ‘예언’처럼 맞아떨어진 것이다. 캄파라의 설득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이 투자회사는 이익금을 바로 회사에 재투자할 정도로 골든구스 마니아가 됐다고 전해진다.
골든구스 SS21 드림메이커 컬렉션 사진. /골든구스 제공
20주년을 기념한 책과 슈즈. /골든구스 제공
그는 ‘마법’이라고 말했지만 그 마법 역시도 사람의 손으로 일궈낸 기적 같은 일이었다. 기적이라고 말하지만, 근면과 신념이 만들어낸 열매였을 것이다. ‘사람’을 강조한 이답게 그는 모든 성공의 시작은 다시 ‘사람’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그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일하는 장인들, 공급업자 등을 생각하면 더 열심히 일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탈리아에서 모든 제품을 만드는 골든구스로서는 지난해 코로나 위기가 최악의 사태였을 수 있다. 수많은 공방들이 문들 닫고 중소회사들이 폐업하는 가운데에서도 그는 “우리는 할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다”를 강조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회사는 안정을 찾기 시작했고, 한국 등 아시아를 비롯한 성장으로 균형을 맞출 수 있었다. “우리에겐 (형식상) ‘인사과’ 대신 ‘인재과’(talent department)가 있습니다. 전문가를 고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최고의 ‘인재’를 선택해야 합니다. 가장 열정적인 사람을 고용하는 겁니다. 누구나 직업의 노하우나 과정(AtoZ)에 대해선 배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가진 열정은 배울수가 없습니다. 만약 당신이 돈만 좇는다면 어쩌면 슬픈 삶을 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꿈을 꾸게 된다면, 당신은 정말 당신 인생을 특별하게 만들 반전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저를 보세요!”
‘골든구스’를 상징하는 완벽한 불완전함(The Perfect Imperfection)은 사람을 통해 완성되는 ‘공간’을 남겨둔 것이었다. 20주년을 맞이해 밀라노 신사옥을 선보이면서 가장 고려한 것도 종업원들의 복지와 지속가능성이었다. 언제나 커뮤니티에 모여든 ‘사람’들은 가장 먼저 생각하는 회사. 골든구스의 ‘별’이 마치 사람이 두 팔 벌려 서로를 얼싸안는 포즈처럼 보였다. 줌 카메라를 통해 “이 스웻셔츠(상의) 7년 전 골든구스 컬렉션이고…”라며 자신의 패션 스타일을 설명하는 캄파라 CEO를 눈앞에서 봤다면, 아마 여느 이탈리아 사람답게 큰 소리로 인사하며 골든구스의 ‘별’처럼 양팔 벌려 서로를 맞이해줬을지도 모른다. 골든구스는, 아마 사람의 온기를 운동화에, 부츠에, 가방에, 옷에, 또 당신의 마음에 그 별을 새겨놓았던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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