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오히려 기회로… 미켈레의 한발 앞선 ‘구찌 페스트’
[THE BOUTIQUE 편집장 레터]

‘위기를 기회로!’ 산업 현장에서 만날 법했던 구호가 최근 예술문화계에서 새삼스레 들린다. 세계적인 팝그룹 위상을 자랑하는 BTS나 블랙핑크 등 대중음악 분야는 온라인 콘서트를 시도하는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대면 콘서트가 주는 감동을 온라인으로는 충분히 흡수하기 어려울 수 있어, VR등 첨단 기술을 통해 실사처럼 구현하려는 노력도 한다. 물론 이러한 콘서트 방식이 통하는 건 극히 일부 그룹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도 있긴 하다. 국내 상당수 대중 음악계를 포함해 클래식 등 공연계 전반이 고사 위기를 겪으며 쉽게 헤어나오기 어려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 패션계 역시 대표적으로 타격받은 곳 중 하나다. 대외 활동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새로 옷을 사야 할 이유를 찾기도 힘들고, 굳이 산다고 한들 편안한 의상으로 옷장을 채우곤 한다. 거기에 패션이 가장 패셔너블하게 보이는 순간, 즉 패션쇼를 여는 것이 어려워지면서 ‘패션’에 대한 정체성마저도 흔들리는 듯하다. 디지털, 버추얼, 증강현실 비슷하지만 조금씩 다른 언어로 시도를 해보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시각적 충격과 감각적 흥분, 오감을 자극하는 총체적인 축제 같은 패션쇼가 점차 사라지고, 실제로 구현한다 한들 규모를 대폭 축소해 과거의 ‘쇼’다움을 잃어가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패션쇼를 과연 열어야 할까 라는 의문까지 생길 정도다. 여기서 위에 했던 구호, ‘위기를 기회로’를 다시 한 번 외쳐야 겠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손 모으고 있기엔 패션계 창의적인 천재들의 예술혼이 더욱 세밀하게 조각되고 있으니까.

언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구찌의 총괄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보여준 ‘구찌 페스트(GucciFest)’는 한 차원 달라진 코로나 극복 방식의 좋은 예가 될 것 같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영상을 통한 패션쇼. 영화 ‘아이다호’ ‘굿윌헌팅’ 등으로 소외된 이들을 보듬는 역작을 남긴 구스 반 산트 감독과 손잡고 말 그대로 ‘축제’를 만든 것이다.
그간 패션 필름은 수없이 보아왔다. 세계적인 거장 감독과 손잡는 일도 다반사였다. 최근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폴 앤드류 디자이너는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가슴 설레는 영상미학과 탄탄한 스토리라인을 선사하며 ‘거장’ 반열에 선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과 손잡고 쇼 영상을 제작했다. 디올은 매혹적인 미장센의 마법사 마테오 가로네 감독과 협업했다.
미켈레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갔다. 16일부터 22일까지(현지시각) 7개의 미니시리즈로 된 패션 영화를 완성했다. ‘구찌페스트’ 사이트와 유튜브 등을 통해 볼 수 있는 이 작품은 구스 반 산트 감독이 이탈리아 행위예술가이자 배우인 실비아 칼데로니를 앞세워 초현실적인 드라마 ‘끝나지 않은 무언가의 서막(OVERTURE of Something that never ends)’이라는 제목으로 완성해냈다. 패션이라는 것이 현실을 뛰어넘는 상상력으로 이뤄지는 작업임을 생각해보면,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 ‘패션쇼의 캣워크가 사라졌을 때의 패션의 미래’같은 것을 바탕으로 이번 작품을 기획한 미켈레가 세상을 얼마나 빠르게 읽는지를 엿볼 수 있다. 주인공은 자신의 집에서부터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TV에선 영어와 이탈리아어가 뜻모르게 나오고, 여러 지역의 교차편집을 통해 낯선 곳으로 자신을 이탈시킨다. 빌리 아일리시와 해리 스타일스 등 구찌를 대표하는 스타들도 카메오 출연한다. 주인공은 구찌 드레스로 갈아입고, 영상 속에선 구찌 의상을 입은 이들이 거리를 감싼다. 자연스레 구찌 세상 속으로 녹아드는 것이다.
이를 앞두고 전 세계 기자 16명만을 대상으로 열린 온라인 간담회에서 미켈레는 “옷을 자유롭게 하고 싶다”면서 “패션이 매장에 갇혀 있는 일은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구스 반 산트 감독은 “넷플릭스(Netflix)에서 찾을 수 있을 만한 일을 한 것은 처음이었다”면서 “시즌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담아 컬렉션을 아우르고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연출할 수 있어 정말 좋았다”고 말했다. 반 산트 감독은 “코로나 팬데믹은 모든 것을 작은 컴퓨터 스크린 속으로 집어넣었다”고 말했다. 화면 예술의 최정점인 영상작업을 통해 영상 속 옷 정보를 다시 찾아가게 하는 것, 매장을 벗어나 옷을 자유롭게 하겠다는 미켈레식 패션 복음서가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