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의 벽’ 깬… 패션, 또 다시 변화한다
[THE BOUTIQUE 편집장 레터]
코로나 사태는 우리로 하여금 각 분야에서 많은 도전에 직면하게 했다. 패션계도 예외는 아니다. 한때 ‘소수’만 초청하는 패션계의 관행을 깨고자 대중을 향한 온라인 라이브 스트리밍을 강조하고, 드롭(drop·수시로 제품을 선보이는 것) 형식으로 팬들의 관심을 끌긴 했지만, 코로나는 이러한 점진적인 변화를 비웃기라도 하는 듯 모두를 한꺼번에 디지털 세상 속으로 인도했다. 비슷비슷한 디지털 기술 속에서 어떤 식의 스토리를 짜고, 어떤 촬영 감독과 영상을 만들며, 어떤 식으로 화려하게 화면을 메우는 것이 더욱 효과적으로 다가갈지가 패션계의 과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질수록, “뭐가 새롭지?” “뭐가 다르지?”라는 이야기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과거 유명 영화감독이 촬영하는 ‘패션 필름’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일반인 모델이나 직원이 런웨이를 장식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그래서일까.

최근 열린 밀라노· 파리 등 해외 패션위크는 ‘온라인’에서 다시 ‘오프라인’ 무대를 시도하고 있다. 코로나 사태를 극복하는 가장 시각적인 충격으로 택한 것이 ‘대면 접촉’이라는 아이러니를 택한 듯 보인다. 초청 인원의 숫자를 대폭 줄이고, 참석객 모두 마스크를 썼지만, 참석객들은 예나 지금이나 휴대폰으로 모델을 담느라 여념없는 모습이었다. 오프라인에서 이뤄지는 온라인화. 이전에도 항상 있었던 그 모습이지만, 코로나 시기 참담한 심정 속에서 바라보는 ‘패션 판타지’는 과거와는 사뭇 다른 ‘파워’를 지닌 듯하다. 온라인으로 패션쇼를 찾아보는 이들의 참여가 대폭 늘었기 때문이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각) 파리 패션 위크의 문을 연 디올은 어둠이 가득한 교회 예배당 같은 분위기에서 런웨이를 시작했다. 12명의 아카펠라 싱어의 천상에 닿을 듯한 목소리가 엄혹한 시기에 인간미를 불어넣는 듯하다. 넉넉한 바지와 여신풍 드레스, 기존 디올에서 보여줬던 아름다운 디자인에 한결 여유를 더한 실루엣이 눈길을 끌었다. 코로나로 인한 여행 제한 때문에 주로 프랑스 내국인으로 구성된, 평소 5분의 1정도 밖에 되지 않는 350명의 관중뿐이었지만, 대중을 향한 파급력은 대단했다. 라이브 스트리밍을 본 사람만 9500만명. 틱톡 등 12개 플랫폼으로 전송된 쇼는 1주일 만에 1억1500만회 넘게 재생됐다. 기존 디올 쇼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역대급’ 수치. 중국 웨이보에선 #DiorSS21 해시태그가 3억6000만 개나 된다.

MZ 세대가 특히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진 영국 출신 디자이너 매튜 윌리엄스가 이번 시즌 새롭게 합류한 지방시는 온라인 스트리밍 대신 인스타그램이라는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택해 또 다른 화제가 됐다. ‘자가격리’ 시대에서 전 세계를 어떤 식으로 이을 지에 대한 그의 창의성이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첫 컬렉션을 선보이면서 동시에 세계적인 모델이나 할리우드 스타인 킴 카다시안, 벨라 하디드, 켄달 제너, 카일리 제너, 케이트 모스, 나오미 캠벨, 카이아 거버, 로라 던 등에게 입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리게 했다. 쇼 의상을 모델들이 다시 선보이는 룩북(lookbook)의 형태 파괴이기도 하다. 테니스 스타인 마리아 샤라포바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지방시의 요청으로 '파리가 아닌 ' 집에서 매튜 윌리엄스의 지방시 데뷔 컬렉션 의상을 입게 됐다”는 소감을 올리기도 했다. 국내 톱 모델인 아이린과 힙합 스타인 크러쉬도 캠페인 모델로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우울한 시기(a depressing moment)를 그렸다”는 그라치아 치우리 디올 디자이너의 말과는 달리 ‘디지털 세대’의 적극적인 영상과 온라인 플랫폼 소비는 패션의 가능성을 또다시 엿보게 했다. 코로나는 패션계에 거대한 ‘우울증’을 몰고 왔지만, 그만큼의 극복 가능한 ‘숙제’역시 던져준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