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디지털 속으로… 그러나 패션은 멈추지 않는다
입력 2020.07.23 18:35

패션은 디지털이다. 사람들 앞에 나서 눈으로 직접 보고 평가 받아야 할 패션이지만, 이번 시즌 전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팬데믹으로 디지털 세계 속에서 그 실물을 공개하게 됐다. 대신 패션은 멈추지 않는다. 다른 방식으로 진화한다. 협업이 훨씬 더 다양해졌고, 패션 필름을 넘어선 최대 24시간 라이브 쇼의 형태까지 갖췄다. 디지털 세계에서도 좀 더 패셔너블한 감각을 선보이기 위해 각 브랜드들은 자신만의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덕분에 이번 시즌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훨씬 강해졌다는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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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구찌 광고 캠페인을 완성한 구찌 디자이너 등이 모델로 나선 ‘에필로그 컬렉션’. 76벌의 의상을 입은 모델 사진에 미켈레가 직접 쓴 노트가 눈길을 사로잡는다./구찌 제공
프라다는 더욱 프라다스러워졌고, 구찌는 역시나 구찌다웠다. 페라가모는 'PS21컬렉션'이란 이름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짚는 서사적 영상을 선보여 호평받기도 했다. 세라믹 아티스트 브라이언 로슈포트와 협업한 벨루티의 크리스반 아쉐는 파리에서, 브라이언 로슈포트는 자신의 스튜디오가 있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디지털로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해 '디지털 시대'에 접어든 우리의 삶을 비춰보게 했다. 디지털로만 감상해야 하는 아쉬움을 디자너의 창의성으로 다소 해소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시즌 패션 콘셉트를 패션 관계자와 소비자에 전달하는 소통방식에서 눈에 띄는 몇 개의 브랜드를 꼽았다.

◇ 디자이너가 모델이 되다, 자존심 끝판왕 구찌

구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3부작 동화 마지막 이야기, '에필로그(Epilogue) 컬렉션'은 기존의 전통적인 패션 규칙과 시각을 뒤집는 실험적인 방식으로 진행됐다. Gucci.com 및 구찌 공식 SNS 채널을 통해 지난 17일 전 세계에 전파된 이번 컬렉션은 패션 세계를 유지시켜 나가는 규칙과 역할, 기능에 의문을 제기한다. 지난 5월 광고 캠페인을 탄생시킨 이들이 직접 입고 선보인 것이 특징이다. 즉, 알레산드로 미켈레와 함께 창조의 매력적인 순간들을 함께 나누는 디자이너들이 자신들의 몸으로 직접 새로운 이야기를 써 내려갔고, 창조적인 행위 자체가 전시의 방식이 되면서 역할이 다시 한 번 역전되는 과정을 선보였다.

◇ 멀티플 뷰, 프라다의 정수를 맛보다

프라다의 2021 봄/여름 멀티플 뷰(Multiple Views)는 하나의 컬렉션을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했다. 프라다 남성과 여성 제품을 동시에 선보였는데, 하나의 컨셉을 유지하면서도 개성을 강조한, 다섯 아티스트의 다섯 챕터로 표현됐다. 터렌스 낸시, 조아나 피오트로프스카, 마틴 심스, 유르겐 텔러 그리고 윌리 반데페르가 창의적인 메세지를 더해 필름에 담았다.

갈수록 복잡해지는 시간 속에서 프라다 의상은 단순화되고, 명확했다. 스포츠 웨어와 포멀함, 클래식과 퓨처리즘 등을 동시에 표현해, 이 시대의 다양성과 역설적인 면도 엿볼 수 있었다. 남성복의 실루엣은 날렵하고 몸에 밀착되었고, 프라다의 혁신적인 소재 '나일론'과 스트레치성 소재를 전형적인 수트에 조합했다. 여성복도 마찬가지로 같은 마찬가지로 같은 소재를 사용했고 볼륨과 부드러운 터치를 가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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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벨루티 디자이너 크리스 반 아쉐가 세라믹 아티스트 브라이언 로슈포트와 협업한 이번 컬렉션. 다채로운 색상과 질감이 감각적으로 표현됐다. ②간결한 라인이 살아있는 프라다 2021봄·여름 컬렉션. ③경쾌함이 살아있는 발렌티노 2021 리조트 컬렉션. ④아프리카 정수가 담긴 이국적인 디올 남성 2021 여름 컬렉션. ⑤서울의 느낌을 담은 준지 2021 봄여름 컬렉션. /벨루티·프라다·발렌티노·디올·준지 제공
◇ 단순함이 존재감을 극대화하는 발렌티노

발렌티노의 리조트 2021은 형태의 기본적인 선까지 걷어내고 여기에 공들인 장인 정신이 더해지면서 재료가 지닌 그 자체의 색상과 질감, 선이 구체화된다. 숙고의 시간을 거친 기본적인 기하학 형태가 노력하지 않아도 완벽한 커팅으로 도출됐다. 남성, 여성 컬렉션을 구별하지 않고 패브릭이 몸에 딱 맞게 선보인다. 그린, 레드, 핑크 색상은 기울어져 흐르는듯한 자연스러운 실루엣을 표현한다. 미학적인 간결함은 꾸미지 않은 듯한 편안함을 선사한다. 튜닉, 탑, 트라우저, 케이프 등의 아이템이 일관된 컬렉션 룩에 어우러져 기하학적인 느낌을 더한다. 태피스트리 모티프는 형태가 완전히 사라져 표현된다. 새롭게 선보이는'아틀리에 백'과 슈즈는 발렌티노의 헤리티지와 모던함을 장인정신으로 구현해 꽃과 나비, 스터드를 가죽 소재와 스트로 소재로 완성했다.

◇ 문화적 융합의 극치 디올

2021 여름은 정체성과 창조성의 힘, 의미를 전달하는 예술의 가치를 표현한 컬렉션이다. Dior Men의 아티스틱 디렉터 킴 존스는 가나 출신 아티스트 아모아코 보아포와 의기투합했다. 디올 하우스에 무한 영감을 준 아프리카 대륙. 킴 존스는 어린 시절을 아프리카의 다섯 개 나라인 보츠와나, 탄자니아, 에티오피아, 케냐, 가나에서 보냈다. 보아포의 유명한 작품인 블랙 디아스포라 초상화에서 그는 흑인으로서, 특히 흑인 남성으로서 스스로의 정체성과 인식을 탐구한다. 생기 넘치고 초현실에 가까운 색조에서 차용하여 형광 빛의 플루오 옐로우와 블루, 코랄, 그린이 어우러진다. 그림의 필치가 느껴지는 자카드는 킴 존스가 자신의 스튜디오에 있는 텍스처가 풍부한 캔버스를 직접 촬영한 사진을 기초로 했다.

◇ 서울을 담았다, 준지

디지털 파리 패션위크에 참석한 글로벌 브랜드 준지(JUUN.J)는 대한민국 수도인 서울을 중심으로, 10개의 거리를 런웨이 삼아 2021년 봄여름 시즌 컬렉션을 선보였다. 서울을 대표할 수 있는 한강, 시청, 북촌한옥마을, 남대문, 동대문, 을지로, 이태원, 서울역, 덕수궁, 광화문을 런웨이 삼아 패션쇼를 진행했다. 또 밀리터리 디테일을 사용해 실루엣을 풍성하고 유연하게 표현했다. 꼼비네죵, 이중 디테일 팬츠와 밀리터리 니트 드레스, 준지의 시그니쳐 아이템 MA-1, 에코레더 스테디움 재킷, 가죽점퍼 등 총 21개 스타일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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