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막스의 50년… "태생부터 DNA로 보여준 스타일"
입력 2019.12.06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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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사진 위부터) 1971년 사진가 그레고아르 알렉산드르가 촬영한 가을 겨울 아카이브 룩. 그린렌치형 코트 재단이 모던하다. 1971년 그라치아 매거진 11월 7일 자에 실린 1971 가을 겨울 의상 디자이너 카스텔 바작의 1976년 가을 겨울 의상 스케치 1991년 가을겨울 스포트막스 광고캠페인. 사진가 로버트 에드만. 모델 엠마 스요르베르와 나드제 드 보스펄터스. 2004년 스포트막스 가을겨울 광고캠페인. 사진가 미카엘 얀손. 모델 캐롤라인 트렌티니. 2009년 가을겨울 스포트막스 광고캠페인. 사진가 데이비드 심스. 모델 칼리 클로스. 2014년 스포트막스 봄여름 광고캠페인. 사진가 데이비스 심스. 모델 시그리드 아그렌.
'창의와 도전'. 대부분 패션 브랜드가 지향하는 바이지만,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스포트막스(Sportmax)'는 이 단어를 품고 태어났다. 올해로 50주년을 맞는 이 브랜드는 디자이너가 아닌 패션 에디터에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기며 트렌드의 맥을 짚는데 앞장섰고, 당대 재능있는 디자이너들과 협업하며 오늘날의 '협업' 트렌드를 30년 전부터 주도했다. 요즘 패션쇼 방식의 캣워크를 '모회사'인 막스마라보다 6년 앞선 1976년 선보였다. 시대 흐름을 먼저 읽고, 빠르게 시도했다. 최근 여러 패션 브랜드가 시도하는 모듈러 의상, 즉 다양한 소재를 해체 조합하고 어우러지게 믹스 매치하는 방식도 스포트막스가 태생부터 DNA로 보여준 스타일이다. '스포트'라는 단어가 들어 있어 막스마라의 스포츠의류가 아니냐는 착각을 하기도 한다. 젊고, 경쾌하고, 역동적. 그것이 바로 스포트막스다.

좋은 브랜드가 위대한 브랜드로 변하는 데엔 선험적인 도전으로 시대 담론을 형성하는 핵심 인물이 존재한다. 1951년 막스마라에 이어 1969년 스포트막스를 창립한 아킬레 마라모티다. 당시만 해도 사회적 환경 변화에 뒤늦게 따라가곤 했던 의복의 변화를 누구보다도 먼저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양한 신체와 새로운 영역 진출에 대한 여러 가지 필요를 반영한 옷을 지어야 한다고 설파한 걸 보면, 선지적 인류학자나 다름없다. 1965년 오직 젊은 소비자층만을 겨냥한 POP 라인을 출시했는데 이는 후에 스포트막스의 탄생 계기가 된다. 막스마라와 스포트막스의 역할을 '패션과 보그'라는 단어로 구분한 아킬레 마라모티의 철학을 들어보자. 그는 1971년 아리아나 잡지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설명했다. "제가 의미하는 '패션'이란, 의복을 착용한 여성이 언제든지 확실하게 편안함을 느끼는 상태입니다. '이 옷이 내게 맞나?'라는 질문에 확실히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는 게 '패션' 입니다. 반면 '보그'는 소위 '집단적 의복'이라고 할 수 있는 옷입니다. 즉 유행을 따르는 옷으로, 멋을 추구하는 여성들이 입고 있기에 나도 입는 종류의 의복을 의미합니다. 이 두 단어를 실제 의류 라벨로 풀어낸 것이 바로 막스마라=패션, 스포트막스=보그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그'로서의 스포트막스를 눈으로 확인한 건 지난 9월 밀라노 패션 위크 기간 중 선보인 스포트막스 50주년 기념 캡슐 컬렉션에서. 1970년대 스포트막스가 의상과 코트를 해체해 재구성 하는 기술을 보여줬는데, 특수 재봉틀로 만든 특별한 스티치가 눈에 띄었다. 떼고 붙이고 연결하는, 흥미로운 작업을 작품 자체가 오롯이 담고 있었다. 색이 가미된 바늘땀은 스포트막스 특유의 의상임을 표식하는 시그니처가 됐다. 당시 분위기를 상기시키는 에메랄드그린, 딥 레드, 울트라마린 블루 등 강렬한 세 가지 색조로 구성됐다. 프랑스 아티스트 오로르 드 라 모리네리에 영감을 받아 시각적인 영상미는 한결 우아하게 펼쳐졌다. 코트, 재킷, 드레스, 셔츠, 니트웨어 등 총 열 다섯개의 의류로 이루어진 이번 캡슐 컬렉션은 내년 9월 국내 막스마라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만나볼수 있다.

그 앞서 50주년을 기념하는 책자에서도 디자인을 만날 수 있다. 럭셔리 아트북 출판사 애슐린의 독점 출판으로 지난 50년을 회고한다. 전례 없는 사회, 문화적 혁명의 한가운데서 'Swinging London'(신나는 런던)으로 대표되는 역동적인 유스 컬쳐를 마주한 아킬레 마라모티의 론칭부터 전설은 시작된다. 유명한 전직 패션 모델이자 프랑스 엘르(Elle)지 패션 에디터로 활약 중이던 리슨 본필이 총괄 디렉터를 맡은데 이어 브랜드 미학과 국제적 안목 형성에 기여한 나니 스트라다, 장 샤를르 드 카스텔바작, 오딜 랑숑, 기 폴린와 같은 유수한 재능의 디자이너들도 스포트막스에 힘을 보탰다. 1983년부터 브랜드 패션 디렉터가 된 그라치아 말라골리는 로열 컬리지 오브 런던을 막 졸업한 학생들과 협업하며 젊고 신선한 감각으로 창조적 인재와 협업해나갔다. 그룹 내 창조적 인큐베이터 역할을 한 것이다.

패션 전문 저널리스트 루크 레이치는 "아킬레 마라모티가 설립하고 창조적 인재들이 다듬으며 혁신적 기업가정신을 실현한 브랜드 스포트막스는 지난 50년간 사회적 변화, 특히 여성의 취향 변화를 반영하는 프리즘과 거울 역할을 하면서 시대상과 트렌드를 예견해왔다"고 밝혔고, 유명 전시 큐레이터이자 이 책을 편집한 올리비에 사이야르는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스포트막스는 일상의 삶에 시적인 감수성을 멋지게 녹여냈다. 매일의 삶에 시를 수놓고 평범한 일상에 고귀함을 부여하면서, 스포트막스는 과시적인 의상 보다는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의상을 선호하는 전 세계 여성들의 사랑을 받으며 명성을 이어왔다"고 강조했다.

책에 실린 스포트막스의 여러 기념비적인 의상을 보면 현대적인 테일러링인 '뉴 페미닌'으로 여성 본연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한다. 자유로운 테일러링으로 어떤 몸매의 여성이라도 흐르는 듯한 실루엣으로 미학을 창조하고, 조립식 토털 룩으로 다양한 믹스매치를 가능하게 했다. 1970년대 카스텔바작과 협업해 큰 인기를 누린 바이커 룩도 스포트막스의 DNA 한 축을 담당하고 있고, 가죽과 주름잡기(플리팅)는 매 시즌 진화하며 감각적이면서도 현대적인 감수성을 주입한다. 창조적 해석을 곁들인 니트 웨어 역시 매 컬렉션에 포함되고, 생생한 컬러와 패턴 역시 스포트막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핵심 요소다. 스포츠 정신에 기반한 에너지와 역동성은 변화와 진보라는 사명감까지 불러 넣는다.

곧 전세계에서 만날 수 있는 이 책에선 사라 문, 피터 린드버그 등 중 주요 패션 사진가의 80년대 중반 작업도 엿볼 수 있다. 당시 무명 신인 모델이었던 야스민 르 본, 카를라 브루니를 피사체로 한다. 또 세계적인 사진작가이자 아트 디렉터인 알버트 왓슨, 마크 홈, 이네즈 반 램스위드, 데이비드 심스 등이 강력하고도 시간을 초월하는 이미지로 스포트막스 컬렉션을 해석해왔다. 책 커버에는 역동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심스의 이미지가 사용됐다. 그 동안 출판된 적 없는 드로잉, 백스테이지 사진, 편집본, 캠페인, 프랑스 사진가 그레고리 알렉산더가 해석한 70년대부터 오늘날까지의 상징적 의상 이미지를 포함하고 있다. 루이지 마라모티 회장은 서문에서 "올리비에 사이야르가 스포트막스를 '화려함과 기이함에서 벗어난 일상 속의 시'라고 묘사한 것은 매우 적절하다. 지난 50년간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다양한 창조적 인재들과 협업하며 탐구해온 여정이야말로 우리가 자부심을 느끼는 진정한 성취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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