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지속가능 패션
입력 2019.11.21 19:21

폐플라스틱 추출 섬유, 식물원료 인조모피 등 첨단 신소재로
랄프 로렌, 보테가 베네타, 프라다 등 패션에 환경을 입히다

지속가능 패션도 진화한다. '빨리' '싸게'를 내세워 친환경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던 H&M이나 자라 같은 브랜드에서도 지속가능 패션 라인을 선보이며 소비자들의 관심을 다시 끌고 있다. 폐 플라스틱이나 폐 현수막 등 생활 폐기물을 재활용해 사용하는 '업사이클링'이나 자연 분해가 쉬운 생분해 원단 등을 이용하는 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첨단 기술력으로 폐플라스틱에서 섬유를 추출하는 등 지속가능한 신소재를 만들어내고 있다.

미국을 대표하는 브랜드 랄프 로렌이 지난 4월 선보인 '어스 폴로(Earth Polo)'는 재활용된 플라스틱병에서 추출한 실로 제작된다. 셔츠 한벌당 평균 12개의 플라스틱병을 사용한다.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 물을 사용하지 않는 공정 역시 혁신적이다. 온라인에선 #TheEarthPolo라는 해시태그를 다는 운동도 한창이다. 랄프 로렌의 창의혁신부서 최고 책임자인 데이비드 로렌은 "2025년까지 매립지 및 바다에서 1억 7000만개의 플라스틱 병을 제거하는데 힘쓸 것"이라면서 "전 세계적으로 환경에 가장 큰 위협을 주는 플라스틱 문제를 혁신적인 접근법을 통해 풀어내며, 가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 플라스틱병 재활용 단체인 퍼스트 마일(First Mile)과 협력했다.

이탈리안 럭셔리 브랜드 보테가 베네타는 지속 가능한 신소재인 '코르크'를 활용한 파우치를 2020 프리스프링 컬렉션에서 선보였다. 지난봄 컬렉션에서 첫선을 보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다니엘 리의 파우치가 이번엔 천연 섬유 코르크와 펜넬을 이용해 디자인한 것. 기존 파우치 디자인에 핸들 디테일을 더한 숄더 파우치는 이번 시즌 새롭게 등장한 제품. 역시 같은 지속가능소재 코르크로 제작됐다.

1978년부터 테스토 나일론으로 업계 혁신을 일으킨 프라다는 지속가능패션 시대를 맞아 '리나일론'으로 또 한 번 혁신을 꾀한다. 섬유 생산 업체 아쿠아필과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에코닐(ECONYL) 나일론은 바다, 낚시 그물, 방직용 섬유 폐기물에서 수집한 플라스틱 폐기물의 재활용 및 정화 공정을 통해 얻은 소재다. 품질 손상 없이 재활용 가능한 것도 장점이다. 프라다 그룹의 마케팅 및 커뮤니케이션 책임자인 로렌조 베르텔리는 "기존 나일론을 2021년 말까지는 모두 재생된 에코닐로 전환하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벨트 백, 숄더 백, 토트 백, 더플 백, 2개의 백팩 등 6개 클래식 스타일로 판매 수익금 중 일부는 지속 가능 환경과 관련된 프로젝트에 기부된다. 내셔널 지오그래픽과 함께 '왓 위 캐리(What We Carry·우리가 드는 것)' 단편 영화 시리즈 역시 볼거리. 아프리카 미국, 아시아, 오세아니아 등 대륙을 거치며 에코닐 원단을 만들어내는 공장 시설과 내부 등을 공개하고 각기 다른 재활용 원료의 출처를 보여준다. 결과물뿐만 아니라 생산 과정에 대해서도 알고 싶어하는 밀레니얼·Z세대를 특히 고려한 듯 보인다. 예를 들어 세계적인 모델 아둑 아케치 비오르와 탐험가 조 커틀러는 4000헥타르가 넘는 아프리카 카메룬의 오사 호수로 안내한다. 동식물 보호구역이자 지역사회 생계수단이지만 때문에 수백개의 어망이 수십년에 걸쳐 호수에 폐기됐던 곳. 지역사회와 국제사회 협력을 통해 지금까지 어망 수거작업을 통해 6톤 이상을 회수했고, 아쿠아필은 이 어망과 다른 폐기물 등을 이용해 새로운 재생 나일론인 에코닐로 변환시켰다. 에코닐을 통해 석유·이산화탄소 배출 등 지구 온난화에 끼치는 영향을 80%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버버리 역시 8월 에코닐로 만든 캡슐 컬렉션을 론칭하면서 지속가능패션을 알리고 있다.

지속 가능패션은 윤리적인 소비 분야를 포용한다. 모피 착용으로 '윤리적인 소비' 문제로 논란이 일었던 영국 여왕도 앞으로는 모피를 입지 않겠다고 최근 선언한 바 있다. 영국 찰스 왕세자 역시 자신의 재단을 통해 최근 영국 육스 네타포르테 그룹과 손잡고 '모던 아티잔 프로젝트(현대적 의미의 장인을 키워나가는 프로젝트)' 협약을 맺고 내년부터 지속가능 패션 관련한 제품을 선보이기로 했다. 덕분에 떠오른 페이크 퍼(fake fur), 에코 퍼 등 기존의 모피를 대체하는 인조모피 분야도 마찬가지. 이전까지 동물 보호 등 윤리적인 이유가 강했다면 이젠 환경적인 부분까지 고려하고 있다. 인조 모피라고 해서 환경에 반드시 도움되는 건 아니라는 반발에서다. 각종 화학 섬유 등 인조모피용으로 쓰이는 원단이 오히려 분해가 어렵고 환경 파괴 요인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지속가능패션 분야에서 선도적인 스텔라 매카트니는 비건 모피를 생산하는 '에코펠'과 손잡고 코바(Koba)'라는 원단으로 된 인조 모피를 선보였다. 미국의 듀폰사가 선보인 식물 기반 원료로 만드는 소로나 섬유를 이용해 옥수수 부산물과 폴리에스터 등 37%가 식물원료로 만들어진다.

지금 추세라면 10년 뒤까지 1억톤이 넘는 옷이 만들어질 거라는 둥, 특수 소재를 이용하면 수만톤의 석유 소비를 절약한다는 둥, 이산화탄소 발생을 수십만 톤 줄인다는지 하는 숫자 자체는 쉽게 감이 안올 수 있다. 게다가 지속가능 패션은 결코 싸지 않다. 거대한 지표가 와 닿지 않아 실상으로 적용했을 때 역시 갸웃거리게 된다는 이도 있다. 플라스틱 빨대가 얼굴에 박힌 바다 거북이가 눈에 아른거려 종이컵 대신 머그컵을 선택했지만 각종 세제와 오·폐수 역시 환경오염을 일으키긴 마찬가지인 것 같은 생각마저 들 수 있다. 손해는 아니겠지만 당장의 별반 이득도 아닌 듯한 기분이 든다면, 지금 다시 옷장을 살펴볼 것. 옷장에서 잠자고 있는 쓰레기 더미에 놀라는 건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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