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드림 오트쿠틔르쇼
디자이너 피엘파올로 피촐리를 만나다

디자이너 피엘파올로 피촐리(Pierpaolo Piccioli)는 옷으로 시를 짓는다. 화폭이 살아 움직이고, 건축적인 조형이 눈앞에 실현되는 건 어쩌면 그 앞에선 평범하게 들릴 것 같다. 기존 오트쿠틔르 의상들이 보여줬던 그 모든 실험을 그는 이미 통달한 듯 보이니 말이다. 그의 옷에선 사랑이 춤췄고, 꽃과 나비가 살아 움직이는 듯 생명력이 움트고 있었으며, 밤하늘의 은하수가 알알이 새겨져 있었다. 다양한 볼륨의 나비모양 리본(bow) 수백개를 단 쿠틔르 의상을 본 팬들은 말한다. "피촐리에게 고개를 숙여(take a bow·bow가 '나비모양 리본'과 '절하다'라는 뜻을 가진걸 이용한 언어유희)". 마법이 일어났다. 오트쿠틔르의 정수를 담은 이탈리아 고급 패션브랜드 발렌티노는 디자이너 피엘파올로 피촐리를 통해 그 전설을 다시한번 확인시켰다. 욕망과 현실 괴리 속에 막연한 공상적 도피처 같은 백일몽(daydream)이 그의 손을 통해 현실화됐기 때문이다.

7일 중국 베이징 이화원(Summer Palace)에서 선보인 '발렌티노 데이드림 오트쿠틔르쇼'는 누구나 한번 꿈꿔봤을 극적인 아름다움을 눈앞에 그려놓았다. 이날 공개된 45벌의 쿠틔르 드레스는 핑크, 레드, 골드, 에메랄드그린 등 다양한 색상의 원단으로 마치 유색 보석이 살아움직이는 듯했다. 표면의 풍부함으로 볼륨의 순수함이 증폭되고 각종 자수와 거대한 리본, 풍성한 볼륨의 볼 가운, 와이드 팬츠, 서걱서걱 소리가 나는 묵직한 원단의 롱 드레스는 극적인 순간을 기대하는 사람들의 예상 수치를 한층 더 뛰어넘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피촐리는 "쿠틔르 하우스의 전통과 명맥을 잇는 현장을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사람들이 진정 갈구하는 것은 'human touch'(인간미)이자 인간적인 감수성을 느끼고 싶다는 걸 쿠틔르를 통해 구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패션은 언어입니다. 미학과 가치를 내 방식대로 보여주는 것이지요. 많은 이들에게 감정을 옷으로 번역해 전달한다는 건, 그걸 상대가 자신만의 언어로 다시 받아들인다는 것 정말 아름다운 기회입니다. 나는 일로서 패션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내가 정말 사랑하는 것을 하는 것인 패션을 삶에서 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업자인 발렌티노 가라바니의 뒤를 이어 2008년부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은 피촐리는 '열린 귀'를 가진 디자이너로도 유명하다. 후배 디자이너들의 의견을 수시로 받아들이며 적극적으로 개선할 줄 알았던 가라바니의 리더십에서 많은 걸 배웠다고 했다. 그가 함께하는 직원들과 장인들을 칭송하는 방법은 이날 선보인 의상 소개 책자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작품과 의상을 함께 지은 이들의 이름을 일일이 거론하며 직원을 기렸다. 그의 오트쿠틔르 의상엔 피촐리만의 생각이 담긴 게 아니란 걸 우아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수십년간 발렌티노에서 몸담았던 장인들이 상상해오고 그려왔던 꿈을 동시에 승화시키는 작업이었다.
'오트쿠틔르의 왕'이라는 별칭이 벌써부터 따라다니는 피촐리는 "논쟁이 아니라 받아들이며 젊은이들과 호흡해나간다"고 말을 받았다. "리더라는 건 혼자 존재할 수 없어요. 물론 무언가 생각해내고 창조하고 비전을 반영하고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길은 디자이너 혼자만의 작업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항상 동료들과 이야기하면서 그들의 반응을 듣고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누며 수정해 나가죠. 난 강력하고 옹고집으로만 가득찬 왕이 되려는 게 아닙니다. 대적하기 힘든 개성으로 억누르려는 것이 아닌, 포용하고 들으면서 이해하다 보면 절로 진보해 나가죠." 그래서인지, 지난해 그를 봤을 때보다 한결 여유롭고 포근하며 부드러워진 인상이었다. 초조하거나 조마조마한 순간 사람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긴장되거나 얼어붙은 표정을 자기도 모르게 뿜어내기 마련이다. 그의 너그러운 제스처는 자신감의 표현이었고, 스트리트 패션과 쿠틔르 감성을 오가는 그의 균형감각을 다시금 믿을 수 있다는 감정적 신호였다. "스트레스가 없다"는 그의 말이 진심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했다.
그가 평소에도 좋아한다는 '데이드림'은 이번 베이징 행사를 위해 특별히 선정됐다. 오늘날 발렌티노의 포괄적 층들을 묘사하는 것을 목표로 다양한 행동을 전개한다. 데이드림은 눈을 뜬 채 꾸는 꿈이다. 그것은 현실과 소망 사이에서 현실이 되어 사라지는 경계로 만들어진 판타지이다. 예를 들어, 세계적인 뷰티 아티스트인 팻 맥그래스가 모델의 얼굴과 입술 모두를 반짝이는 금속 느낌으로 탈바꿈시킨 장면은 전신 은빛의 새퀸 드레스와 어울려 환상 속의 환상을 걷는 듯한 기분을 준다. 붉게 타오르는 듯 반짝이는 입술. 새의 날갯짓 같은 커다라고 깊은 아이라인, 광택 나는 은빛으로 얼굴 전체 감싼 모델은 3만2000개의 은빛 새퀸이 달린 드레스로 이화원 정원을 누빈다. 1300시간이 걸려 완성하거나, 600미터의 타프타 실크 원단을 봉제선 없이 완벽하게 구조화시키는 작업은 분명 세속적 욕망이 담겨 있을 텐데도, 속세를 초월한 듯한 쿠틔르의 세계로 우릴 안내한다. 그는 이날 인스타그램을 통해 "꿈은 영혼의 언어다. 우리 모두는 꿈을 꾸고, 꿈은 각자 다를 수 있지만 동시에 같을 수도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꿈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피촐리는 어느 날 막내 딸아이가 빠져 읽던 니체를 다시금 읽으며 새로 태어났다고 말했다. "'나'에 대한 탐구를 할 수 있는 시간이었죠. 좀 더 감성적인 내면과의 접촉을 시도하게 됐고, 미래에 대해 불안하거나 호들갑 하지 않으며 감정이 말하는 것에 자연스레 반응하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니체의 초인은 이성적 한계를 인정하고 겸허하면서도 꾸준히 행복을 추구하며 고통을 받아들이고 미래로 나아가는 연습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디자이너로서, 미학적 감수성을 추구하는 인간으로서도 한 단계 진화한 것이지요."
이날 쿠틔르에선 피엘파올로 피촐리가 사랑한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예를 들어 성 프란체스코성당 안의 제단 벽화 '십자가 전설'을 완성한 화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수태고지'의 프라 안젤리코 등이 선보였던 성스러우면서도 명석한 빛의 처리가 돋보였던 벽화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숭고함마저 엿보였다. 피엘파올로 피촐리는 동시대의 가장 유능한 쿠틔리에로, 메종 발렌티노는 쿠틔르의 감성을 가장 잘 표출할 수 있는 하우스임을 다시 한번 전 세계에 과시한 계기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단순히 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 피촐리는 중국 산리툰 플래그십 매장에서 다시 한 번 더 현실 속으로 진격한다. 영국 유명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한 이 플래그십 스토어엔 오트쿠틔르 같이 풍성한 볼륨을 살린 원피스와 아우터 등이 '실용적인' 가격과 원단으로 한층 소비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마작, 요요, 개목걸이, 성냥, 공책, 물병 등 생활 소품마저도 현실로 내려온 쿠틔르처럼 소화해냈다. 그는 "스트리트 웨어와 쿠틔르는 삶과 꿈으로 번역할 수 있다"며 "양쪽 모두에게 생명력을 주는 것이 디자이너의 목표"라고 말했다.
피촐리에게 이제 불가능이란 없어 보인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신의 철학을 밝히는 피촐리는 쇼 뒤에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글귀를 인용해 의상과 함께 대중에게 선보였다. "The real voyage of discovery con sists not in seeking new landscapes, but in having new eyes.(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것이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피촐리는 "쿠틔르 하우스의 전통과 명맥을 잇는 현장을 보여주고 싶었다"면서 "사람들이 진정 갈구하는 것은 'human touch'(인간미)이자 인간적인 감수성을 느끼고 싶다는 걸 쿠틔르를 통해 구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패션은 언어입니다. 미학과 가치를 내 방식대로 보여주는 것이지요. 많은 이들에게 감정을 옷으로 번역해 전달한다는 건, 그걸 상대가 자신만의 언어로 다시 받아들인다는 것 정말 아름다운 기회입니다. 나는 일로서 패션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내가 정말 사랑하는 것을 하는 것인 패션을 삶에서 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업자인 발렌티노 가라바니의 뒤를 이어 2008년부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은 피촐리는 '열린 귀'를 가진 디자이너로도 유명하다. 후배 디자이너들의 의견을 수시로 받아들이며 적극적으로 개선할 줄 알았던 가라바니의 리더십에서 많은 걸 배웠다고 했다. 그가 함께하는 직원들과 장인들을 칭송하는 방법은 이날 선보인 의상 소개 책자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작품과 의상을 함께 지은 이들의 이름을 일일이 거론하며 직원을 기렸다. 그의 오트쿠틔르 의상엔 피촐리만의 생각이 담긴 게 아니란 걸 우아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수십년간 발렌티노에서 몸담았던 장인들이 상상해오고 그려왔던 꿈을 동시에 승화시키는 작업이었다.
'오트쿠틔르의 왕'이라는 별칭이 벌써부터 따라다니는 피촐리는 "논쟁이 아니라 받아들이며 젊은이들과 호흡해나간다"고 말을 받았다. "리더라는 건 혼자 존재할 수 없어요. 물론 무언가 생각해내고 창조하고 비전을 반영하고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길은 디자이너 혼자만의 작업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항상 동료들과 이야기하면서 그들의 반응을 듣고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누며 수정해 나가죠. 난 강력하고 옹고집으로만 가득찬 왕이 되려는 게 아닙니다. 대적하기 힘든 개성으로 억누르려는 것이 아닌, 포용하고 들으면서 이해하다 보면 절로 진보해 나가죠." 그래서인지, 지난해 그를 봤을 때보다 한결 여유롭고 포근하며 부드러워진 인상이었다. 초조하거나 조마조마한 순간 사람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긴장되거나 얼어붙은 표정을 자기도 모르게 뿜어내기 마련이다. 그의 너그러운 제스처는 자신감의 표현이었고, 스트리트 패션과 쿠틔르 감성을 오가는 그의 균형감각을 다시금 믿을 수 있다는 감정적 신호였다. "스트레스가 없다"는 그의 말이 진심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했다.
그가 평소에도 좋아한다는 '데이드림'은 이번 베이징 행사를 위해 특별히 선정됐다. 오늘날 발렌티노의 포괄적 층들을 묘사하는 것을 목표로 다양한 행동을 전개한다. 데이드림은 눈을 뜬 채 꾸는 꿈이다. 그것은 현실과 소망 사이에서 현실이 되어 사라지는 경계로 만들어진 판타지이다. 예를 들어, 세계적인 뷰티 아티스트인 팻 맥그래스가 모델의 얼굴과 입술 모두를 반짝이는 금속 느낌으로 탈바꿈시킨 장면은 전신 은빛의 새퀸 드레스와 어울려 환상 속의 환상을 걷는 듯한 기분을 준다. 붉게 타오르는 듯 반짝이는 입술. 새의 날갯짓 같은 커다라고 깊은 아이라인, 광택 나는 은빛으로 얼굴 전체 감싼 모델은 3만2000개의 은빛 새퀸이 달린 드레스로 이화원 정원을 누빈다. 1300시간이 걸려 완성하거나, 600미터의 타프타 실크 원단을 봉제선 없이 완벽하게 구조화시키는 작업은 분명 세속적 욕망이 담겨 있을 텐데도, 속세를 초월한 듯한 쿠틔르의 세계로 우릴 안내한다. 그는 이날 인스타그램을 통해 "꿈은 영혼의 언어다. 우리 모두는 꿈을 꾸고, 꿈은 각자 다를 수 있지만 동시에 같을 수도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꿈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피촐리는 어느 날 막내 딸아이가 빠져 읽던 니체를 다시금 읽으며 새로 태어났다고 말했다. "'나'에 대한 탐구를 할 수 있는 시간이었죠. 좀 더 감성적인 내면과의 접촉을 시도하게 됐고, 미래에 대해 불안하거나 호들갑 하지 않으며 감정이 말하는 것에 자연스레 반응하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니체의 초인은 이성적 한계를 인정하고 겸허하면서도 꾸준히 행복을 추구하며 고통을 받아들이고 미래로 나아가는 연습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디자이너로서, 미학적 감수성을 추구하는 인간으로서도 한 단계 진화한 것이지요."
이날 쿠틔르에선 피엘파올로 피촐리가 사랑한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예를 들어 성 프란체스코성당 안의 제단 벽화 '십자가 전설'을 완성한 화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수태고지'의 프라 안젤리코 등이 선보였던 성스러우면서도 명석한 빛의 처리가 돋보였던 벽화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숭고함마저 엿보였다. 피엘파올로 피촐리는 동시대의 가장 유능한 쿠틔리에로, 메종 발렌티노는 쿠틔르의 감성을 가장 잘 표출할 수 있는 하우스임을 다시 한번 전 세계에 과시한 계기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단순히 꿈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 피촐리는 중국 산리툰 플래그십 매장에서 다시 한 번 더 현실 속으로 진격한다. 영국 유명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한 이 플래그십 스토어엔 오트쿠틔르 같이 풍성한 볼륨을 살린 원피스와 아우터 등이 '실용적인' 가격과 원단으로 한층 소비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마작, 요요, 개목걸이, 성냥, 공책, 물병 등 생활 소품마저도 현실로 내려온 쿠틔르처럼 소화해냈다. 그는 "스트리트 웨어와 쿠틔르는 삶과 꿈으로 번역할 수 있다"며 "양쪽 모두에게 생명력을 주는 것이 디자이너의 목표"라고 말했다.
피촐리에게 이제 불가능이란 없어 보인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신의 철학을 밝히는 피촐리는 쇼 뒤에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글귀를 인용해 의상과 함께 대중에게 선보였다. "The real voyage of discovery con sists not in seeking new landscapes, but in having new eyes.(진정한 여행이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