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인 것에서… 럭셔리를 발견하다
입력 2019.10.24 18:14

불가리X알렉산더 왕이 선보인 듀엣 백.
불가리X알렉산더 왕이 선보인 듀엣 백.
'아이콘'을 재해석한다는 건 위험을 감수한다는 얘기다. 자신의 스타일을 가미하되, 전통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예민하게 미학적 감도를 높여야 하는 막중한 일이다. 게다가 보석을 가방으로 풀어내는 건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보석이 지니는 영롱함과 영원성, 심장까지 투영할 것 같이 미감을 꿰뚫는 우아함을 단단한 가죽을 캔버스 삼아 그려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럭셔리 보석 브랜드 불가리와 미국 실용적 럭셔리의 대표주자 알렉산더 왕의 만남은 또 한 번의 혁신이다. 불가리가 이미 불가리 특유의 강하고 센슈얼한 디자인으로 액세서리 군에서 약진하고 있지만 한층 더 패셔너블한 호흡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디자이너와 손을 잡은 것이다.

협업을 진행한 디자이너 알렉산더 왕.
협업을 진행한 디자이너 알렉산더 왕.
알렉산더 왕은 어떠한가. 럭셔리 하우스 발렌시아가 총괄 디자이너를 경험하며 쿠튀르 감각을 익혔고, 스타 디자이너만 선택받는다는 H&M과 대중을 위한 협업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중저가부터 초고가까지 모든 라인을 섭렵한 이다. 날렵하고 미니멀한 재단도 눈에 띄지만, 여성의 곡선을 최대한 살리되 군더더기 없이 유연한 라인과 청순과 섹시를 오가는 감춰진 커팅으로 입는 이를 즐겁게 하는 디자이너다. 스무살에 데뷔하며 '천재' 디자이너로 꼽혔고, 덕분에 이제 겨우 30대 중반인데 내년이면 15주년을 맞는 '중견'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해외 유명 스타들은 그의 '절친'임을 인증하는 '왕스쿼드(Wangsquad)' 혹은 '알렉산더 갱(gang·패션 마니아를 뜻하는 용어)'을 기꺼이 자처했고, 그 역시 끊임없는 파티로 그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알렉산더 왕 군단'을 대대적으로 키웠다. 최근 저스틴 비버와 결혼한 톱 모델 헤일리 비버는 그의 뮤즈로 불가리X알렉산더 왕 캠페인에 등장했고, 지지 하디드·벨라 하디드, 켄달 제너·카일리 제너 등 모델이자 할리우드 톱스타들도 왕을 따른다.

미국적 실용주의의 완벽한 계승자이자, 최근 유행하는 다양성에도 적합한 디자이너다. 아시아계 미국인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일군 성공한 이민 2세의 상징인 그다. 불가리의 선택은 영민했다. 기존의 고객층뿐만 아니라 알렉산더 왕을 통해 더욱 다양한 고객과의 접점을 만들어 낸 것이다. 지난 17일 중국 상하이에서 공개된 '알렉산더 왕 x 불가리 세르펜티 백 캡슐 컬렉션'에선 하이엔드 주얼리를 좀 더 다양한 각도로 조명한 알렉산더 왕의 스타일이 상하이 불가리 호텔 론칭 현장에 모인 천여 명의 팬을 유혹했다. 2017년에 시작된 '세르펜티 콜라보레이션 (Serpenti Through the Eyes Of)' 프로젝트 시리즈를 잇는 '알렉산더 왕 x 불가리'의 콜라보레이션은 아이코닉한 세르펜티 포에버 백의 재해석과 더불어 '럭셔리 패키징'이란 컨셉에 초점을 맞춰 그동안 평범하게 여겨져온 패키지를 고급스러운 디자인으로 변모시켰다. 알렉산더 왕은 "불가리가 콜라보레이션을 제안했을 때, 이내 나는 사람들이 명품을 구매할 때 간과하는 일상적인 아이템을 재창조하는 작업에 몰두하게 되었다. 일상에서 지나치던 소재를 전 세계 모든 연령대의 고객들이 열망하는 무언가로 탈바꿈시키고자 했다"고 전했다.

현장에서 만난 알렉산더 왕은 "지난해 로마에 있는 불가리 아카이브를 방문하면서 불가리가 그동안 여성들에게 경의를 표한 우아하고 경이로운 방식과, 모든 이들이 삶의 영광스러운 디바(주인공)가 될 수 있다는 개념에 감동했다"며 "일상적인 겉에서 진귀함을 발견하고, 겉으로 보이는 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닌, 마음으로 그 아름다움을 투영해 본다는 관점에 굉장히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불가리
디자이너 알렉산더 왕과 불가리가 선보인 이번 협업에선 일상에서 소홀히 하기 쉬운 패키지부터 ‘럭셔리’의 관점으로 출발했다. 민트 그린, 블랙, 흰색의 가방. / 불가리 제공
불가리
(사진 왼쪽부터) 불가리X알렉산더 왕이 선보인 쇼퍼백과 투-인-원 사첼백, 알렉산더 왕이 스케치한 트리플렛 백 모습.
럭셔리에 대한 감성도 새롭게 정의했다. 그에게 "럭셔리는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그는 "이번 협업 가방을 디자인하면서 소비자들이 핸드백을 사는 행위부터 연구하고 계발해 내는데 출발했다"고 응수했다. 자신을 위해, 혹은 타인을 위해 투자를 하는 그 순간부터 럭셔리는 탄생한다는 정의였다. 때문에 겉으론 잘 보이지 않는 패키지부터 그는 재해석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빈티지한 시계 박스, 더스트 백 그리고 종이 쇼핑백 같은 전통적인 패키지 요소를 파고 들어 아이코닉한 디자인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었다. 1950년대의 불가리 세르펜티 주얼리를 재해석한 헤드 장식 역시 돋보였다. 눈매가 살아있고, 그 당시 주얼리에서 보였듯이, 날카로운 이빨까지 한올한올 새겨져 한층 살아있는 듯한 디테일을 가미했다. 불가리의 상징인 금색 장식이긴 하지만 빈티지한 느낌으로 해석돼 묵직하면서도 고풍스럽고, 우아한 색감으로 마무리했다. 뱀의 문양에서 영감 받은 듯 핸드백 외관을 감싸는 디자인 역시 멀리서도 '불가리'임을 알아보게 했다. 알렉산더 왕은 "그냥 간과할 수 있는 패키지 역시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고급스러운 요소라고 생각해왔다"며 "사소한 것들이 사소하게 느껴지지 않고, 소유하고픈 열망을 생성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럭셔리"라고 설명했다.

지난 9월 뉴욕에서 열렸던 것과 비슷하게 현장은 불가리X알렉산더 왕 가방으로 장식된 검은 마네킹이 진열장에서 매혹적인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화이트, 블랙, 민트 그린의 소프트 카프 레더부터 내추럴 파이톤 스킨 그리고 샤이니 리자드 레더 등 6가지 각기 다른 디자인이 신선하게 변주했다. 익히 '블랙 마니아'로 알려진 알렉산더 왕은 "녹차에서 영감 받은 불가리 향수에서 민트 색상을 떠올리게 됐다"며 "불가리가 하이주얼리부터, 파인 주얼리, 호텔, 가죽제품, 뷰티 다양한 분야에서 왕좌를 거머쥐고 있지만, 어린 시절 불가리를 처음 접한 것이 바로 불가리 향수였기에 강한 기억으로 각인됐다"고 말했다. 특히 눈에 띈 건 벨트 백. 두 개의 특징적인 뱀 머리 클로저, 탈부착 가능한 스트랩 및 핸들로 이루어져 있어 크로스백, 숄더백 혹은 허리에 착용하는 벨트백 등 하나의 가방으로 다양한 스타일로 연출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이날 행사장을 뜨겁게 달군 가수 지코 역시 벨트 백을 착용해 '걸어 다니는 패션 사전'이자 패션의 '완성'을 온몸으로 보여줬다. 지코에게 '킹'이란 별명이 왜 붙는 지 바로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더블 플랩으로 구성된 숄더백인 '듀엣백'은 내부 포켓이 한결 실용적이고 '트리플렛' 3개의 플랩엔 알렉산더 왕이 새롭게 제시한 3개의 세르펜티 클로저가 각각 장식되어 신비한 매력이 배가됐다. 새로운 '미노디에르'는 구조적인 사각 모양 실루엣으로 보석함을 연상시켰고, 불가리의 아이코닉한 투보가스 스타일의 세르펜티 브레이슬릿을 장착해 불가리의 주얼러 DNA를 담아냈다는 평가다. 드로우스트링(조임끈)이 장착된 '투-인-원 사첼백'은 부드러운 가죽 소재의 더스트 백이 사첼 핸드백을 감싸는 디자인으로 빈티지한 세르펜티 헤드 잠금장치 장식이 포인트가 됐다. 알렉산더 왕은 "디자이너로서의 일과, 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이 두가지 요소에 집중하며 함께 일하는 사람에 대한 중요성과 가치를 더욱 일궜더니 지금 이 자리에 오를 수 있게 된 것 같다"며 "고객들한테 어떤 서비스를 더 보일까, 어떻게 하면 고객들이 더욱 좋아할 수 있을까 하는 점을 창조적인 관점으로 재해석해내며 매일 진보하고 싶다"고 말했다. '갖고 싶다', 이 관점에서 그는, 또 한번의 성공을 일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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