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계에 다시 한 번 '각인'받은 그저 그들의 솜씨가 놀라울 뿐
입력 2019.09.26 19:15

2020년 봄여름 밀라노 패션 위크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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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테가 베네타의 '20SS' 밀라노 컬렉션 의상. 하늘, 민트, 주홍 등 밝고 경쾌한 색감에 우아함을 더했다.
'각인'을 받는다는 것 만큼 패션계에서 불가사의한 일도 없다. 오늘 등장한 디자이너가 내일 소리소문없이 사라질 수 있는 게 패션계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번 '2020 봄여름 밀라노 패션 위크'는 미우치아 프라다 같은 전통의 디자이너, '전설' 아르마니 뿐만 아니라 구찌를 부활시킨 알레산드로 미켈레, 패션계 최고의 신성으로 불리는 보테가 베네타의 다니엘 리 등 자신의 스타일을 다시 한 번 세계 패션계에 각인시키는 무대였다.

밀라노 패션 위크의 무대를 연 프라다는 그녀의 장기인 특유의 재단과 플리츠 드레스, 깃털 무늬 패턴 등으로 눈길을 끌었다. 미니멀리즘을 대표하는 '간결'의 대명사답게 빈틈없이 완벽한 디자인으로 갈채를 받았다. 프라다는 쇼 뒤 기자들에게 "단순함이 제일 먼저이고 가장 중요하다. 트렌드에 휘둘리지 않고 언제든 유효한 타임리스 패션으로 절대 던져버릴 일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패션 왕'으로 불리는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아르마니 재단'이라 불리는 흠결없는 재킷과 오간자, 실크 소재 등으로 여성미를 극대화했다. 현장을 찾은 많은 기자와 패션 평론가, VIP 들이 아르마니에게 보내는 박수는 찬사 그 이상의 존경과 존중 경외와 감탄이 묻어났다. 그 어떤 의상을 만든다 해도 아르마니는 아르마니 그 자체로 위대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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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의 '20SS' 밀라노 컬렉션 의상은 미켈레 특유의 '긱 스타일'에 완결성을 한층 높였다.
밀라노를 이끄는 투톱 구찌와 보테가 베네타는 그들의 디자이너 선택이 얼마나 완벽했는지 다시 '각인' 시키는 계기였다. 패션계 고고학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는 구찌의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미셸 푸코의 '신체관'에서 영감을 받아 구속과 해방 자유에 대한 논의로 쇼를 풀어갔다. 쇼 초반 선보인 구속복(straitjacket·정신 이상자와 같이 폭력적인 사람의 행동을 제압하기 위해 입히는 것)에 대해 한 모델이 '정신건강은 패션이 아니다(Mental health is not fashion)'라는 일종의 '항의'를 하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미켈레는 이러한 행동마저도 예언한 듯, "권력이 우리 삶을 얼마나 지배하는지 이에 대한 탈출과 극복을 패션을 통해 선보이고 싶었다"고 쇼의 콘셉트에 대해 밝혔다. 쇼 뒤 열린 기자회견에선 "유니폼을 선보인 것"이라며 "판매용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감을 견뎌라'라는 말처럼 미켈레의 명성과 권위를 새삼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쇼 초반에 구속복 퍼레이드에 이어 '진짜' 구찌를 선보이는 자리에선, 그의 '미학적인 긱(geek·괴짜) 스타일'의 정점을 보여주는 듯했다. 한결 정제된 재단과 스타일로 과감하고 대담하며 섹시하지만 고급스럽게 포장한 그의 솜씨가 놀라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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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부터 높은 완성도의 보테가 베네타 SS20 밀라노 컬렉션 남성복. 프라다는 특유의 미니멀리즘 재단으로 눈길을 끌었다. 기능성 높은 부쉬 재킷과 각종 반바지 슈트를 선보인 막스마라. 70년대풍 선글라스 등 액세서리도 화제였던 구찌 SS20 밀라노 컬렉션. / 보테가 베네타·구찌·프라다·EPA연합뉴스 제공
보테가 베네타의 다니엘 리는 이제 2회째의 런웨이를 '다니엘 리 스타일'로 완벽히 채워버렸다. 해외 매체들은 최근 몇 년간 여성들이 가장 입고싶어했던 브랜드를 따서 '새로운 셀린느의 탄생'이라고 명명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셀린느의 피비 파일로 디자이너가 떠나면서 그 대체재를 이제 보테가 베네타에서 찾게 될 것이란 얘기다. 다니엘 리는 보테가 베네타 특유의 꼬임(인트레치아토 기법)을 의상과, 가방으로 자유자재로 변주했다. '100%'라고 극찬받은 남성재킷 등은 바이어들을 줄서게 했다. 기능성 넘치는 다양한 부쉬 재킷을 선보인 막스마라와 새로운 가죽 날염 기법을 자랑한 토즈, 친환경 모토를 내세운 마르니 등도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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