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을 혁신으로… 144년, 독보적 장인정신으로 이어진 완벽한 시간
입력 2019.05.23 18:24

오데마 피게 Audemars Piguet

스위스 에너지 표준 친환경 건물인 '매뉴팩처 데 포르주'는 산림 보호와 친환경 경영에 헌신한다는 오데마 피게(AP) 재단의 모토를 반영했다.
스위스 에너지 표준 친환경 건물인 '매뉴팩처 데 포르주'는 산림 보호와 친환경 경영에 헌신한다는 오데마 피게(AP) 재단의 모토를 반영했다. / 오데마 피게 제공

스위스 쥐라 산맥 끝자락에 있는 발레 드 주(Vallée de Joux)의 작은 마을 르 브라수스(Le Brassus). 지난 1875년 스위스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 오데마 피게(Audemars Piguet)가 첫 공방 문을 연 곳이다. 오데마 피게는 창업주 가문에서 단 한 번도 명맥이 끊기지 않고 4대째 운영되는 유일한 브랜드. 1851년 르 브라수스 워치메이커 가문 출신의 쥴스 루이스 오데마와 1853년 발레 드 주 워치메이커 가문 출신의 에드워드 오거스트 피게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1875년 이 두 사람이 고도로 정교한 메커니즘을 장착한 시계의 디자인 및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오데마 피게의 유구한 역사가 시작됐다. 20세기 초 경제 대공황이나, 1980년대 쿼츠 파동으로 시계 산업 위기가 왔을 때도 전혀 흔들림 없이 장인정신의 가치를 지키며 독립 회사로 남아온 곳이다. 주인이 여러 번 바뀌고 브랜드 인지도가 흔들리던 여타 회사와 비교하면 최고의 시계를 만든다는 자부심과 자존심으로 세계적인 품질을 유지할 수 있었다.

오데마 피게의 새로운 박물관이 될 '메종 드 퐁다테'의 예상도.
오데마 피게의 새로운 박물관이 될 '메종 드 퐁다테'의 예상도. / 오데마 피게 제공
◇144년간 독보적으로 이어진 장인정신의 요람

지난 3월 말 찾은 현장은 1875년부터 이어온 장인정신의 열기를 눈앞에 확인시켰다. 당시부터 이어온 매뉴팩처 건물은 오데파 피게의 주된 시설 2개 중 하나로 창립자들이 직접 시계를 제작한 워크숍은 2층에 위치했었다. 현재는 복원 워크숍, 뮤지엄, 오데마 피게 아카이브 센터, 초고도 복잡 부품인 투르비용(중력으로 인한 오차를 줄이는 기능) 워크숍으로 채워져 있다. “먼지가 완벽한 시계를 만드는 데 최대의 적이었죠. 아틀리에 꼭대기에 작업실을 둬야 했습니다. 요즘에는 작업장 안팎으로 기압차를 둬서 밖으로 먼지가 자연스레 빠져나갈 수 있게 했습니다.” 오데마 피게 매뉴팩처 관계자의 설명이 이어졌다. 과거의 정신은 유지하되 최첨단 기술로 완벽성을 높이는 방증이다.

“아카이브엔 144년 역사가 담긴 약 1300 피스의 시계가 있지요. 초기 회중시계에서부터 단조 카본으로 만든 가장 현대적인 로열 오크 오프쇼어까지 그간 오데마 피게가 어떤 시계를 어떻게 제작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복원 워크숍에선 가장 복잡하고 희귀한 무브먼트를 복원하기 위해 필요한 설계도와, 고도로 체계화된 빈티지 시계 부품들이 보존된다. 만약 부품이 수리가 불가능한 경우, 복원 전문가들은 전통적인 공법과 고유의 도구를 사용하여 새로운 부품들을 제작하기도 한다. 특히 1882년부터 장부 기록서가 손으로 꼼꼼히 적혀 있었는데, 바쉐론 콘스탄틴이나 티파니 브레게 등 회사가 오데마 피게의 고객 명단으로 눈에 띄었다. 1889년 당시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는 기술인 13개의 컴플리케이션이 들어간 시계나 1917년 당시 아르데코 스타일의 여성 시계나, 1959년 최초의 윤년 인디케이터가 들어간 퍼페추얼 캘린더가 들어간 시계 같은 빈티지 시계도 완벽한 모습으로 확인할 수 있다.

다양한 아카이브가 자랑인 오데마 피게 박물관.
다양한 아카이브가 자랑인 오데마 피게 박물관. / 오데마 피게 제공
르 로클에 세워지는 '매뉴팩처 데 세뇰'의 첫 삽을 뜨는 모습.
르 로클에 세워지는 '매뉴팩처 데 세뇰'의 첫 삽을 뜨는 모습. / 오데마 피게 제공
◇이보다 더 친환경적일 순 없다

브랜드의 주된 2가지 시설 중 다른 하나는 2008년 완공된 매뉴팩처 데 포르주(Manufacture des Forges). 산림 보호와 친환경 경영에 헌신한다는 오데마 피게 재단의 모토에 따라 스위스 에너지 표준 ‘미네르기-에코’를 준수한다. “건축에 흔히 사용되는 석면, 시멘트, 수성 페인트는 사용할 수 없지요. 지속 가능하고, 재활용 가능한 무독성 소재만 허용됩니다. 멀리서 자재를 가져오느라 공해가 발생할 우려를 피하기 위해 매뉴팩처 부근의 자갈을 분쇄해 만든 모래 소재의 콘크리트를 사용했습니다.” 오데마 피게 매뉴팩처 건물들을 오가기 위한 셔틀로 수력 에너지로 구동되는 두 대의 친환경 연료전지 자동차를 이용한다.

전통을 혁신으로 개혁한다는 오데마 피게는 현재 뇌샤텔 주에 있는 르 로클 지역에 매뉴팩처 데 세뇰(Manufacture des Saignoles)를 짓고 있다. 스위스의 건설 업체 쿠닉 드 모자이어의 디자인으로 이들은 규모에 상관없이, 환경과의 교류, 결합 및 연결과 같은 넓은 관점으로 접근해 공간을 상황과 환경에 완전히 들어맞게 만들어낸다. 언덕 위에 있지만 기둥을 이용해 단층의 수평 설계됐다. 역시 환경 친화적인 경영 모토 아래 스위스 친환경 건축인증인 ‘미네르기 레이블’ 요건에 따라 건설되고 있다. 또 건강을 해치는 각종 자기장을 최소화한다. 환경을 지키면서 직원들의 근무 환경도 최적화한다는 계획이다. 144년간 독립회사로 살아남았다는 건 브랜드 충성심이 강한 직원들의 단합도 한몫했기 때문이다. 시계 산업 위기 때 다른 직업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는 이들이 많았지만 오데마 피게는 20년 근속 근무는 ‘보통’이다. “오케스트라처럼 각 분야가 화합을 이룬다”는 프랑수아 앙리 베나미아스 CEO 말대로 앞으론 부서간 협력 효율성을 더욱 치밀하게 높일 계획이다. “작업 공정이 워낙 복잡하기 때문에 부서 간 유연한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지요. 부서 간의 단절 단절(사일로화: silo-isation)를 최소화시키는 방향으로 설계됐고, 종합적인 팀워크가 가능하도록 매뉴팩처를 부분적으로 모듈화할 계획입니다.”

◇전통을 역동적으로 잇는 새로운 뮤지엄

최근 고급 시계업계에서 가장 화제는 오데마 피게의 뮤지엄과 호텔 건설. 2014년 세계적인 건축회사인 BIG에 의뢰해 뮤지엄과 건축물을 확장해 새로운 뮤지엄을 ‘창립자의 메종’이라는 뜻의 ‘메종 드 퐁다테 (Maison des Fondateurs)’라고 이름 지었다. 본래의 건물에서 이루어졌던 전시공간(약 400피스의 시계 전시)과 워치메이커의 작업 공간인 워크숍, 리셉션, 미팅공간, 시계를 전문적으로 보존할 아카이브 공간이 포함된다. 2400㎡(약 727평) 규모의 나선형 형태의 건물엔 250여년 전 고급 시계 작업서부터 브랜드의 유산의 일부가 포함된 1300피스 이상의 컬렉션이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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