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보다는 실용성… 못생기면 좀 어때 "이게 바로 고프코어 스타일"
입력 2019.03.14 16:22 | 수정 2023.07.13 14:36

최근 옷 좀 입는다고 소문난 패션계의 인플루언서들은 하나같이 '왜 저렇게 입은 거지?'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독특한 스타일을 선보인다. '등산복'으로 여겨지던 아노락이나 양털 점퍼, 플리스 등의 아웃도어 기어에 사은품으로 받은 듯한 낡은 티셔츠,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투박한 운동화나 등산화를 신는 식이다. 그뿐만 아니라 '힙쌕'으로 잘 알려진 웨이스트 백을 허리에 질끈 매거나 복잡하게 생긴 등산용 배낭을 들기도 한다. 한 마디로 '못생긴 옷' 들이다. 이것을 패션용어로는 고프코어(Gorpcore)라고 한다.

아름다움보다는 실용성…
(좌측 사진) 플라워 패턴이 특징인 아노락과 투박한 라인의 데님 팬츠, 미니사이즈 백을 든 루이뷔통 2019년 SS 컬렉션 룩. (우측 사진) 타미힐피거의 2019년 SS 컬렉션 스니커즈.
고프코어는 캠핑과 아웃도어에 관련된 못생긴 옷이 유행하는 트렌드를 일컫는 말이다. 이는 현재 패션씬을 관통하는 큰 흐름인 '어글리프리티(Ugly Pretty)', 즉 못생겼지만 예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그야말로 못생긴 것들의 시대가 온 것이다. 현대적이고 날렵한 것만이 인정받는다고 여겨졌던 패션씬에서 이런 변화는 아주 낯설다. 매끈하게 재단된 팬츠, 날렵한 스틸레토 힐, 치밀하게 계산된 슬릿 스커트 등의 자리를 아노락, 윈드브레이커, 조거팬츠, 볼캡, 등산용 배낭 등의 아웃도어 아이템이 대치하게 된 것을 보면 일견 몇 년 전 유행했던 '평범한 것이 가장 아름답다'던 놈코어(Normcore) 트렌드가 생각나기도 한다. 하지만 고프코어는 '아름다움보다는 실용성이 중요하다.'는 면에서 놈코어 트렌드와는 결이 다르다. 고프(GORP)는 그래놀라(Granola)와 귀리(Oatmeal), 건포도(Rason), 땅콩(Peanuts)의 첫머리를 딴 단어이다. 트레킹이나 캠핑을 하러 갈 때 들고 가는 견과류 믹스를 뜻하는 이 말은, 캠핑이나 트레킹 용 아웃도어 의류나 기어를 지칭하는 단어로 쓰인다. 여기에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스타일을 지칭하는 놈코어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말이다. 결국 고프코어의 정수는 아웃도어 룩에서 나온다. 야외활동에 필요한 아웃도어 의상은 대개 기능성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옷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패션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다. 한국의 수많은 산에서 마주칠 수 있는 총천연색의 등산복을 입은 중장년층처럼 말이다. 몇 년 전 혜성처럼 등장한 브랜드 베트멍(Vetment)은 이런 생각을 바꿔놓았다. '원하는 것을 입으세요. 남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는 것이 가장 멋집니다.' 는 반항적인 말을 컬렉션 전체에 담아낸 듯 베트멍의 런웨이에 선 모델들은 나이대와 신장, 체격까지 패션모델과는 동떨어진,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입은 옷은 하나같이 크기가 제대로 맞지 않고 통일된 스타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될 대로 돼라.'는 베트멍식 옷 입기에 사람들은 열광했고 이런 분위기를 바탕으로 고프코어의 기본이 다져졌다. 이제는 하이패션 브랜드에서 고프코어를 나름으로 해석한 스타일을 빈번하게 볼 수 있다. 금기된 관계였던 샌들과 양말을 만나게 한 프라다와 마르케스 알메이다의 퍼프 재킷, 발렌시아가의 투박한 스니커즈와 침낭을 접어놓은 듯한 수면용 가방, 이전 셀린 컬렉션에 등장한 버켄스탁과 같은 것들 말이다. 고프코어는 '전혀 세련되지 않은 옷보다 더 세련된 것은 없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제 멋보다 편안함과 실용성을 먼저 찾았던 당신은 고프코어라는 단어 하나만 외우면 된다. 누가 뭐래도 내가 입고 싶은 데로 입는 것이 고프코어의 슬로건이니까. "이거 고프코어 스타일이야."라는 말 한마디와 뻔뻔한 표정만 있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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