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시계 복고바람… 100년의 역사를 선물하다"
입력 2019.03.13 16:36 | 수정 2019.03.13 16:58

셀모니 '바쉐론 콘스탄틴' 디렉터
"경매로 최상급 빈티지 시계 확보, 일일이 분해해 3~6개월 수리

“명품 시계업계에도 복고(復古)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전 세계 시계 애호가들이 ‘빈티지 시계’에 열광하고 있기 때문이죠.” 
지난 5일 만난 셀모니 바쉐론 콘스탄틴 디렉터는 “이메일·날씨까지 확인할 수 있는 스마트 시계는 훨씬 실용적인 상품이지만, 시계를 예술 작품으로 대하는 우리는 가는 길이 다르다”고 말했다. /김연정 객원기자
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만난 바쉐론 콘스탄틴의 스타일&헤리티지 디렉터 크리스티안 셀모니(61)씨에게 “‘빈티지 시계’가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웃으며 손목을 뻗어 자신의 시계를 보여줬다. 
1945년에 제작된 스틸 소재 ‘캘린더4240’ 모델이었다. 셀모니씨는 이 시계에 회색 가죽줄을 연결해 차고 있었다. “제작 시기에 따라 바쉐론 콘스탄틴의 시계 디자인도 달라졌습니다. 1930~1940년대에는 자동차·오토바이·조명 등 산업 전반에 ‘유선형(streamline) 디자인’ 열풍이 불었습니다. 그 영향으로 제가 차고 있는 손목 시계 역시 옆면에 세개의 선(線) 디자인이 돋보이죠.”
캘린더 4240은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맞춰입었다는 감색 줄무늬 정장, 자줏빛 양말, 더블 몽크 스트랩 슈즈와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시계 다이얼은 말갛게 세월의 빛을 머금고 있었지만, 반질반질 잘 관리된 모습이 오히려 유행을 앞서 가는 것처럼 보였다. 명품 시계 업계에도 ‘뉴트로(new+retro)’ 열풍이 불어닥친 것일까.
바쉐론 콘스탄틴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시계 제조업체다. 1755년 스위스에서 설립돼 264년간 역사를 이어왔다. 스위스 리치몬트그룹 소속이다. 리치몬트그룹이 보유한 IWC·예거르쿨르트·랑에운트죄네·파네라이·피아제 등 8개 명품 시계 브랜드 중에서도 최고급으로 분류된다. 시계 값은 무려 1000만원대에서부터 수억원에 달한다.
그런 바쉐론 콘스탄틴이 이달 초 한국 시장에 18점의 빈티지 시계를 출시했다. 빈티지 시계는 50~100년 된 시계를 일컫는 말이다. 통상 100년 이상된 시계는 앤티크 시계라고 부른다.
한국으로 온 빈티지 시계는 1913~1931년 출시된 회중시계 4점, 1927~1965년 생산된 손목시계 14점이다. 제작 시기마다 다르게 적용된 디자인·기술이 눈에 띈다. ‘초박형 시계’ 경쟁이 한창이던 1965년에 제작된 빈티지 시계(1540만원)는 두께가 1.64㎜에 불과하다. 
시계 기술의 ‘정수(精髓)’인 ‘미닛리피터(시계 내부에 장착된 해머가 작동해 종소리를 내며 시간을 알려주는 것)’ 기능을 갖춘 1951년산(産) 손목 시계(4억5200만원)도 1점 출시됐다. 68년이나 지났지만 믿을 수 없을 만큼 영롱한 종 소리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바쉐론 콘스탄틴이 1944년부터 1951년 사이 생산한 미닛리피터 시계는 40개가 채 안된다고 한다.
바쉐론 콘스탄틴은 이미 10여년 전부터 일부 매장을 통해 VIP고객을 상대로 빈티지 시계를 알음 알음 판매해왔다. 그러다 3년 전부터 아예 ‘헤리티지(heritage·유산) 부서’를 만들고 본격적인 마케팅에 나섰다. 이 업무를 총괄하는 임원이 셀모니씨다. 시계 제조업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1990년 판매 담당 매니저로 입사해 29년 간 구매·제품 개발·디자인 등 모든 분야를 거쳤다. 바쉐론 콘스탄틴에서는 ‘메종의 살아있는 역사’라고 부른다.
왜 새 제품이 아닌 오래 된 시계를 다시 판매하는 것일까. 빈티지 시계 판매는 기업 입장에선 ‘남는 장사’는 아니다. 시계 경매·고객 의뢰 등을 통해 확보하는 최상급 빈티지 시계가 연 평균 75개에 불과하다. 그런 시계를 일일히 분해해 3~6개월간 수리 과정을 거친다. 그 시대에 썼던 부품이 없으면 설계도를 보고 똑같이 복원한다. 수리 도구 역시 옛 것을 쓴다. 이렇게 완성된 시계 가격은 새 제품보다 낮거나 비슷한 수준이다.
셀모니씨는 “영리 목적으로만 본다면 수익성이 낮은 사업인 것은 확실하다”고 했다. 대신 빈티지 시계의 매력을 세 단어로 요약했다. “빈티지 시계에는 향수(nostalgia), 진정성(authenticity), 고전(classic)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특별합니다. 바쉐론 콘스탄틴이 오래 전부터 이어져 온 기술력과 전통을 소비자에게 자연스럽게 알리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전통 시계 산업은 2015년 스마트 시계인 ‘애플 워치’의 등장으로 변화의 시기를 맞았다. 일본 세이코가 1969년 말 쿼츠(전자식) 시계를 출시한 것과 맞먹는 변화라는 우려도 나온다. 1970년대에 정확하고 저렴한 쿼츠 시계의 출현은 스위스 시계회사들을 줄도산시키는 이른바 ‘쿼츠 쇼크’를 가져왔다. 기존 시계 업체들은 ‘스마트 쇼크’가 신경쓰일 것이다. 이런 시점에 출시된 빈티지 시계는 스마트 시계와는 완전히 대척점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셀모니씨는 바쉐론 콘스탄틴의 ‘헤리티지 전략’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메일·날씨까지 확인할 수 있는 스마트 시계는 훨씬 실용적인 상품이 맞아요. 하지만 우리는 시계를 예술작품으로 대합니다. 가는 길이 완전히 다르죠. 264년 간 흔들림 없이 지켜온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리치몬트 그룹의 명품시계 브랜드 매출은 2008년 13억7800만유로(1조7600억원)에서 지난해 27억1400만유로(3조4600억원)으로 2배 늘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는 관계없이 급성장했다. 한국 시장의 성장세도 눈에 띈다. 스위스시계산업협회에 따르면 한국은 2008년만 하더라도 ‘스위스 시계 판매 국가 15위권’ 순위 밖에 존재했다. 2009년 판매액 2억2300만 스위스프랑(2510억원)으로 13위에 올랐고, 지난해에는 판매액 8억7850만 스위스프랑(9880)으로 11위 국가가 됐다. 판매액 기준으로는 4배 커졌다. 
바쉐론 콘스탄틴이 선보인 18점의 빈티지 시계 가격은 1100만원대에서 4억5000만원대. 전시 일주일 만에 절반 이상이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다. 뜨거운 반응에 스위스 본사에서는 4점을 추가로 한국 시장에 보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한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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