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화질은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초고해상도 TV가 속속 출시되면서 인간의 눈은 과연 어느 정도까지 해상도를 구분, 인식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대두됐다. 이에 대해 뇌 과학에 기반한 흥미로운 답변이 있다. 서울대학교 인지과학연구소장 이경민 교수는 8K 수준의 초고해상도 디스플레이가 뇌 과학적 관점에서 시청자에게 더욱 나은 시청 경험을 가져다준다고 설명했다.

◇뇌 과학으로 풀어본 8K 초고해상도의 비밀

이경민 교수는 8K에 달하는 초고해상도 디스플레이가 상용화되면서 이를 통한 시청 경험이 인간의 뇌에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가에 흥미가 생겨 해당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연구를 통해 8K 디스플레이가 인간의 시각 인지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를 얻었다"며 "초고해상도 디스플레이 기술은 눈을 편안하게 해주는 정도를 넘어 뇌 인지 기능의 원활한 작동을 돕는 '뇌 친화적' 수준에 이르렀다"고 평가했다.

사람의 눈은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본다. 눈앞에 강아지가 뛰어가고 있다면, 눈은 망막에 맺힌 강아지의 모습만 보지만 뇌는 시공간의 연속성 속에서 더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처리한다. 이를 뇌 과학에서는 '초시력'이라고 부르는데, 이 초시력 덕분에 해상도가 무한대에 달하는 실제 환경의 시각 정보들을 무리 없이 인식할 수 있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하지만 저해상도 디스플레이를 통해 콘텐츠를 시청할 때는 문제가 발생한다. 해상도가 낮은 디스플레에서 현실 세계를 재현하려다 보면 상당수의 정보가 소실 또는 왜곡된다. 실제로는 직선 모양인 물체가 저해상도 디스플레이에선 계단 모양으로 잘린 선(broken line)처럼 보이는 게 대표적인 예다. 이처럼 저해상도 디스플레이에서는 초시력이 일어나기 위해 필요한 다수 정보가 사라지거나 뒤틀린다.

8K 디스플레이는 이러한 정보 소실 문제를 해결해준다. 이 교수는 "8K 수준의 고해상도 환경에서는 원근에 따른 입체감, 사물의 질감,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는 세밀한 표정 변화 등의 자세한 정보를 잃어버리거나 왜곡시키지 않고 실제와 유사한 수준으로 구현해낸다"며 "시청자는 실제 환경에서처럼 초시력을 발휘해 생생하고 깊이감 있게 영상을 즐길 수 있다"고 했다.

◇더 편안하고 더 생생하게… 뇌 친화적 기술력

동일한 영상이라도 스마트폰으로 볼 때보다 커다란 컴퓨터 모니터로 봤을 때 화질이 더 나빠 보이는 경우가 있다. 거실 소파에 앉아 3m 앞에 놓인 TV를 볼 때에도 마찬가지다. 저해상도 TV라면 픽셀이 도드라져 보이지 않기 위해선 화면이 작아야 한다. 반면 8K급의 초고해상도 TV는 좋은 화질의 영상을 같은 거리에서 더 큰 화면으로 선명하게 볼 수 있다. 동일한 시청 거리와 동일한 해상도를 유지하면서 화면이 커진다는 건 디스플레이 안에 표현되는 영상의 시청 가능 영역이 넓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교수는 "시청 영역이 확장되면 시청자의 시야 범위가 넓어져 중심 시야뿐만 아니라 주변 시야에 들어오는 다양한 정보를 인지할 수 있다"며 "이로 인해 풍부한 시각 정보를 바탕으로 실제 상황처럼 깊이감 있고 자연스러운 몰입감을 즐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환경을 디스플레이에서 재현하는 과정에서 사라지고, 뒤틀리고, 손상된 시각 정보는 뇌가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게 하고 이 과정에서 시청자는 알게 모르게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이 교수는 "초고해상도 디스플레이는 정보 왜곡을 최소화해 실제 환경과 유사한 시청 경험을 선사한다"며 "이는 곧 뇌의 할 일을 줄여 시청자의 피로를 감소시키고 더욱 쾌적하게 영상에 집중할 수 있게 해준다"고 했다. 그는 이어 "8K 디스플레이와 같은 뇌 친화적 기술이 개발돼 소비자가 한층 더 편안하고 생생하게 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됐다"며 8K 기술이 가져올 새로운 시청 경험에 대한 기대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