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투쟁과 항해의 시간… 패션계, 또 하나의 메시지를 던지다
입력 2018.12.21 03:00 | 수정 2018.12.21 11:55

[최보윤 기자의 럭셔리 토크]

올 한해 패션계를 돌아보면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투쟁과 항해의 시간이었다. 지난해 말 할리우드 권력자인 하비 와인스틴 성범죄 파문 이후 '침묵을 깬' 용기있는 목소리가 힘을 얻으며 패션계 역시 '행동하는' 대열에 앞장섰다. 의상으로 자신의 철학과 의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패션은 옷을 넘어 또 다른 메시지의 창구이자 저항의 상징이 됐다.

[최보윤 기자의 럭셔리 토크]
대표적인 것이 지난 1월 열린 미국 골든 글로브 시상식. 성차별 반대에 목소리를 높였던 배우 메릴 스트리프와 리즈 위더스푼, 앤젤리나 졸리와 나탈리 포트먼 등 대부분의 여배우와 이완 맥그리거, 크리스 햄스워스 등 남성 배우들도 힘을 보내 시상식장을 '블랙'으로 물들였다. 어떤 디자이너의 의상을 입었는지 서로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배우들이 한마음이 돼 성범죄 척결을 위해 몸으로 뜻을 모은 것이다. 역시 검은 드레스 차림의 오프라 윈프리는 "그동안 진실의 목소리를 믿어주지도, 들어주지도 않았지만 이제 때가 왔다(time's up)"며 청중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그 어느 때보다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움직임도 활발했다. 런웨이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는 건 모델의 다양한 피부색이었다. 해외 매체인 '패션 스팟' 통계에 따르면 올 들어 인종 다양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았으며 지난가을 열린 '2019봄여름' 쇼에 나선 백인 이외 인종의 비율이 36.1%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2018가을 겨울 컬렉션 보다 3.6% 증가한 수치다. 특히 메인 모델을 동양인, 흑인 등이 장악한 것도 눈에 띈다.

[최보윤 기자의 럭셔리 토크]
ID매거진은 남수단 출신의 호주 모델 아두트 아케치의 비약적인 성장을 비롯해, 샤넬 발렌티노 등 세계적인 패션쇼 런웨이는 물론 유명 브랜드 광고 캠페인을 휩쓰는 최소라, 신현지 등의 활약도 주목했다. '아시아 원톱'이라 불리는 최소라는 모델스 닷컴 집계 런웨이 쇼 2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번 시즌 무려 35개의 런웨이를 점령했고, 신현지 역시 33개 무대에 서며 저력을 과시했다. 정호연은 샤넬 캠페인 모델로 활약하고 있고, 박희정 역시 지방시 등 다양한 쇼 메인 무대를 장식하며 루이비통 독점 모델로 이름을 알렸다. 아노크 야이는 지난 1991년 나오미 캠벨이 프라다 오프닝 무대에 서며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이후 처음으로 프라다 런웨이 오픈 무대를 장식하는 모델이 됐다. 뿐만 아니라 체형이나 다양한 성적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모델로 런웨이 무대를 누볐다. 구찌의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미켈레 역시 지난해부터 흑인 모델을 캠페인에 대거 기용한 데 이어 올해는 1960년대 68혁명의 기치를 알리는 상징적인 광고 영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디올 역시 "여성의 권리가 바로 인권(Women's Rights Are Human Rights)"이라는 힐러리 클린턴의 말에 힘을 더해 억압과 차별에 저항하고 성평등과 자유, 인권을 외친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젊은이의 반란(youthquake)' 캠페인을 선보이기도 했다.

디자이너의 다양성 역시 올해 두드러진다. 오프화이트의 디자이너이자 흑인인 버질 아블로가 루이비통의 남성 총괄 디자이너가 된 것도 역사에 기록될 만 했다. 그동안의 철옹성을 깨고 흑인이 164년 만에 럭셔리 브랜드를 대표하는 루이비통의 남성부분 디자이너의 수장에 오른 것이다. 디올 남성을 이끄는 킴 존스 역시 흑인이고, 남성 액세서리 라인의 윤안은 한국계다.

세기의 신데렐라로 불렸던 메건 마클 역시 금기 아닌 금기를 깼다. 미국인에 흑인 혼혈이었던 그녀의 영국 왕실 입성은 그 어떤 동화보다 아름다운 스토리로 주목받았다. 지방시의 클레어 웨이트 켈러가 디자인한 우아한 드레스는 '로열'의 위엄을 보여주기 충분했고, 프랑스 패션 명가를 이끄는 영국인 디자이너인 웨이트 켈러의 자부심과 능력 역시 다시 한 번 인정받았다.

정치적 올바름에 관한 최정점은 최근 돌체앤가바나 파문으로 정리된다. 광고 캠페인 영상에서 중국과 아시아에 대한 인종 차별적 이미지를 선보이며 폄훼한 이유로 상하이 패션쇼를 취소한 뒤 매출은 곤두박질 쳤고, 여전히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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