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NOT OK!" 날 선 중국 그리고 위기의 '돌체앤가바나'
입력 2018.12.07 03:00

[최보윤 기자의 럭셔리 토크]

최보윤 편집국 문화부 차장
최근 패션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빠지지 않는 주제가 바로 '돌체앤가바나 사태'다. 중국 상하이 패션쇼를 앞두고 선보인 홍보 영상에서 중국을 비하했다는 비난이 폭주했고, 디자이너가 중국 모델에게 모욕을 준 게 알려지면서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디자이너가 공식 사과를 했지만 소비자들의 분노는 잦아들지 않고 있다. 불매운동이 확산됐고, 유명 백화점들과 럭셔리 온라인 매장도 돌체앤가바나 제품 판매를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와 비즈니스오브패션 등 유력 매체들도 인종차별주의 강한 브랜드 제국주의에 대해 날 선 비판을 가했다. 문화적 소양부족과 몰이해가 브랜드를 영원히 침몰시킬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다.

동양 문화에 대한 잘못된 접근은 이전에도 또 있었다. 지난해에 샤넬이 '코코 서브드 핫(Coco Served Hot)'이라는 광고를 하면서 중국 팬들에게 뭇매를 맞은 적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샤넬 로고가 박힌 중국풍 모자와 의상, 신발을 차려입은 여성 모델이 뉴욕 차이나 타운에서 '짝퉁'으로 보이는 샤넬 가방을 어깨에 주렁주렁 메고 걷는 모습을 연출한 사진이다. 중국 징 데일리는 당시 "중국 차이나 타운의 근로자들이 마치 '짝퉁' 시장과 연관된 듯 보이는 이미지에 소비자들의 분노가 거세다"고 보도했다. 사진작가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해명했지만 중국계 디자이너 필립 림은 "옳지 않다(This is NOT OK!)"며 "모욕적"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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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돌체앤가바나 패션쇼 문구를 철거하는 모습./로이터연합뉴스·AFP연합뉴스
경계를 파괴하고 도전을 중시하는 패션계에서 '인종차별'은 특히 금기어로 꼽히지만 문화적 다양성을 지니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모델 나오미 캠벨이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보그 커버 모델을 한 게 겨우 30년 전이다. 더더군다나 경제력 있는 동양인은 그들에게 '돈줄'이라는 인식도 강했다. '호갱'(호구+고객)이라는 단어를 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돌체앤가바나가 수억 달러의 수입을 잃을 것이란 전망이 보도되면서 업계도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다. 생로랑의 프란체스카 벨레티니 CEO는 파이낸셜 타임스에 "글로벌하게 생각하고, 현지인처럼 행동하라"고 강조했다.

문화적으로 깊은 이해를 한 듯 보이는 브랜드의 경우 찬사를 받기도 한다. 최근 일본 도쿄에서 2019프리폴 컬렉션을 연 발렌티노가 그렇다. 피엘파올로 피치올리는 "연꽃이나 기모노같이 피상적으로 일본에 접근하고 싶지는 않았다"면서 일본의 다양한 신진 디자이너, 아티스트와 협업한 제품을 함께 선보였다. 패션지 하퍼스바자 홍콩판은 "일본 문화에 대한 존중(오마주)이 돋보였다"면서 "다른 나라에서 런웨이를 계획하는 브랜드들이 배워야 할 점"이라고 평가했다.

중국 아티스트가 돌체앤가바나 매장 밖에 써 붙인 문구./로이터연합뉴스·AFP연합뉴스
아시아가 광분했지만 국내에서 돌체앤가바나 사태 여파는 그렇게까지 커 보이진 않는다. 지난 20여년간 돌체앤가바나를 수입해오던 신세계인터내셔날에서 올 초부터 더 이상 거래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제품이 없으니 불매운동을 할 일도 딱히 없다. 판매부진 등 여러 가지 '설'이 돌았지만 직진출이 계획돼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다 보니 '수혜자는 신세계인터내셔날'이라는 소리까지 들린다. 철수한 브랜드에선 '사고'가 생기고, 디자이너 교체로 내홍을 겪은 셀린의 경우 이전 디자이너였던 피비 파일로의 마지막 컬렉션을 구매하기 위한 소비자들의 구매 폭주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면세점에선 외국인 구매 파워에 힘입어 지난 10월 한 달에만 150억원 상당을 팔았다. 면세점 단연 1위인 루이비통을 위협하는 수치라고 한다.

이제 단순히 만들기만 하면 팔리는 시대는 지났다. "옳은 것"을 보여줘야 한다. 치밀하게 다지지 않은 '모래성' 같은 브랜드 명성은 한갓 신기루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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