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윤 기자의 럭셔리 토크]
마이클 코어스
'지미 추' 인수 후 패션계 뜨겁게 달궈
랄프 로렌
브랜드 이미지 갉아먹던 유통망 재정비에 주력
패션 왕국의 두 노장 럭셔리 브랜드로 방향성 잡아가는 중
마이클 코어스라는 브랜드의 방향성 역시 잘 읽히지 않았다. 뉴욕에 가면 어마어마한 성같은 대형 건물에 성조기를 꽂고 마이클 코어스 본사의 위용을 뽐내고 있었지만, 중저가 이미지가 강했다. 뉴욕을 걸으면서 유심히 바라본 사람은 느낄 것이다. 셋 중 하나는 마이클 코어스 가방을 들고 있다는 것을. 그 이야기는 대중적으로 쉽게 이미지가 소비된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매출은 늘지 몰라도 희소성과 소유욕을 기반으로 하는 '럭셔리'의 정의와는 배치된다는 뜻이다.

그랬던 생각이 와르르 무너진 건 그와 한 시간 가까이 대화하면서. 모델이었던 엄마를 따라 아이 모델로 패션계에 발을 들인 그가 서너 살 때 엄마에게 "그 꽃무늬 옷이 웬 말이야? 저 심플한 베이지 셔츠를 입으라고!"라고 외쳤다니 그의 심미안은 뼛속부터 타고난 듯했다. 디자이너로서 철학도 명확했다. 편안한 우아함. 몸을 고문하는 듯 어떻게 입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옷을 해체하고 파괴하는 구조적인 스타일에 모두 열광할 때도 그는 한결같았다. 일하는 여성도 불편하지 않게 잘 맞으면서도 세련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마이클 코어스 못지않게 그동안의 편견을 깨뜨렸던 이가 또 있다. 역시 미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랄프 로렌이다. 어쩌면 내게 랄프 로렌이란 단어는 중고등학교 시절 선망하는 '교복' 스타일에서 멈춰 있었다. '오렌지족'이 유행하던 1990년 당시, 폴로가 그려진 옷은 유학파 부유층이 마치 미국 사립고등학교 교복처럼 입고 다녔더랬다. 어린 눈에는 멋져보였을지 모르지만 머리가 굵어진 이후 '폴로'라는 브랜드에 대한 '탐욕'은 어느덧 사라졌다. 평범해 보이는 것은 그야말로 지루했기 때문이다. 고가의 랄프 로렌 컬렉션이 국내에 소개되고, 전도연·전지현 등 국내 최고 스타들이 입었지만 브랜드 이미지와 럭셔리는 잘 연결되지 않았다.
3년 전 뉴욕에서 랄프 로렌을 만났을 때다. 카우보이 스타일의 프린지(술이 달린 옷) 바지를 입고 나타난 그는 일흔이 넘은 나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이었지만 패션으로 희망을 키워갔던 그. 열일곱에 백화점 매장 재고 관리원으로 일하면서 "환불을 하는 제품을 유심히 보면서 사람들이 무얼 싫어하는지 배웠다"고 말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난 왜 이거밖에 안 될까'라는 신세 한탄이 아니라, 어쩌면 '하찮게' 보이는 일에서도 그는 핵심을 꿰뚫어볼 줄 알았다. 랄프 로렌은 "위대함을 원한다면 그 위대함에 시간을 담으면 된다. 위대함은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고, 마법처럼 손짓 하나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노장은 위대하다. 브랜드 이미지까지 상승시키는 둘의 진격은 지금부터다. 마이클 코어스는 최근 영국의 럭셔리 슈즈 브랜드 지미 추를 약 1조3000억원에 인수하면서 패션계를 뜨겁게 달궜다. 랄프 로렌 역시 그동안 브랜드 이미지를 갉아먹던 마구잡이 할인을 줄이고 유통망을 재정비하면서 실적이 대폭 상승했다. 17세 당시 랄프 로렌이 소비자 취향을 정확히 파악했듯, '럭셔리 브랜드'로 향하는 방향성을 잡아가는 모양새다. 두 브랜드의 올 1분기 실적이 크게 늘면서 최근 주가가 치솟고 있다. 미국에선 특히 '미국 브랜드의 자존심'을 둘이 휘날리는 듯 연일 호평을 내놓고 있다.
마이클 코어스에게 "패션이란 대체 뭔가요?" 물었던 적이 있다. "아주 맛있는, 죽기 전에 반드시 맛봐야 하는 '최후의 만찬' 같은 식사예요!" 만찬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그들은 매일 에너지를 쏟았을 게다. 당신도 지금 좋아하는 일이 있다면 그 일에 시간을 담아보자. '패션 왕국'을 건설한 두 디자이너처럼 당신만의 제국은 어느새 만들어지고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