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가문의 고유한 컬러·패턴이 만들어낸 트렌드
  • 양윤경 패션 칼럼니스트
입력 2017.10.19 16:54

On the Runway

스코틀랜드인은 고집 세고 직설적인 기질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짐작해보건대 그들의 야생적이면서도 척박한 국토에서 온 성정이 꽤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을까 한다. 그런 면에서 에든버러 북쪽에 있는 협곡과 황야와 호수의 땅, 하이랜드는 가장 스코틀랜드다운 지역이다. 19세기 대영제국을 통치했던 빅토리아 여왕은 원초적 대자연을 고스란히 간직한 하이랜드를 유난히 사랑해 매년 여름을 하이랜드에서 보냈다. 영국의 귀족들 또한 산업혁명의 메카 런던의 공장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석탄 연기에 질려 여왕을 따라 하이랜드로 자주 떠났다. 빅토리아 여왕의 부군 앨버트 공은 하이랜드를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발모럴 성을 세우고 타탄체크 패브릭으로 성을 장식했다. 많은 귀족들이 발모럴 성의 타탄 장식이 과하다고 수군거렸지만 여왕 내외는 개의치 않았다. 레드 컬러의 '로열 스튜어트 타탄'과 화이트 컬러의 '드레스 스튜어트 타탄'은 커튼과 각종 장식용 패브릭으로 사용했고, 그린 컬러의 '헌팅 스튜어트 타탄'은 카펫으로 만들어 응접실에 깔았다. 얼핏 모두 같은 체크무늬로 보이지만 각자 이름을 갖고 있는 이유는 하이랜드 지방에서는 타탄에 이름을 붙여 가문의 문장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19세기 무렵 화학 염료의 발명으로 같은 컬러의 실을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되기 전까지 각 가문마다 그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실을 천연 염색한 후 그 지역 장인이 자신만의 방식대로 길쌈을 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지역의 타탄체크 패턴이 똑같기란 불가능했다. 이처럼 왕족에게 사랑받는 무늬라는 귀족적 면모에 오랜 역사가 부여한 헤리티지, 여러 가문에서 고유한 컬러로 만들어낸 다양성, 군부대의 유니폼으로 사용된다는 점에서 오는 위엄성 등 타탄체크는 다른 프린트가 넘볼 수 없는 고고한 이미지를 쌓아왔다. 이것이 바로 트렌드와 상관없이 매해 F/W 시즌만 되면 약속한 듯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타탄체크 아이템을 선보이는 이유다.

여러 가문의 고유한 컬러·패턴이 만들어낸 트렌드

우리나라에서는 웨딩드레스로 더 잘 알려진 디자이너 제니 팩햄은 '영국'이라는 주제로 2017 F/W 레디투웨어 컬렉션을 풀어냈다. 그녀가 찾은 가장 영국적인 요소는 타탄체크와 진주. 페전트 스타일의 롱 타탄체크 드레스는 소박한 영국 여성을, 보디라인을 타이트하게 감싸는 무릎 길이의 포멀한 타탄체크 드레스는 파워풀한 영국 여성을, 하늘하늘한 타탄체크 시폰 위에 작은 진주를 비딩해 만든 투피스는 사랑스러운 영국 여성을 상징하는 듯하다.

디자이너 잭 포즌은 200주년을 맞이한 브룩스 브라더스를 위해 타탄체크를 활용했다. "여성이 정말 입고 싶어 하는 옷 즉, 판타지가 아닌 실제 옷장에 넣을 수 있는 옷을 만들었습니다." 타탄체크 패브릭으로 만든 클래식한 테일러드 슈트와 프레피 룩에 모던함을 불어넣은 브룩스 브라더스의 컬렉션은 보수적인 업타운 레이디를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자칫 캐주얼해질 수 있는 패딩 점퍼 역시 타탄체크를 입혀 슬림한 실루엣으로 디자인하고 시가렛 팬츠를 매치해 그대로 입고 중요한 미팅에 참석해도 될 만큼 말쑥하게 스타일링했다.

루이비통의 니콜라스 게스키에르는 옅은 블루와 블랙, 레드, 옐로, 화이트 컬러가 어우러진 타탄체크 드레스를 선보였다. 이 드레스는 다른 디자이너들의 타탄과 달리 작고 네모난 시퀸 위에 잉크가 흩뿌려진 듯한 인쇄를 해서 가까이에서 보면 기하학적인 프린트지만 멀리서 보면 타탄체크로 보이는 트롱프뢰유(trompe l'oeil, 착시) 효과를 준 독특한 드레스다.

이외에도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타탄체크를 선보이고 있다. 클래식한 타탄체크 그대로를 즐기고 싶다면 그린 컬러로 포인트를 준 사카이의 타탄체크 코트나 빈티지 무드의 컬러 팔레트를 사용한 보테가 베네타의 타탄체크 코트, 니나 리치의 타탄체크 슈트를 눈여겨보면 좋다. 가을과 잘 어울리는 포멀한 룩을 연출할 수 있다. 좀 더 젊고 펑키한 분위기의 타탄체크는 스텔라 매카트니의 컬렉션이나 리하나의 펜티 푸마 컬렉션을 참고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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