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윤 기자의 럭셔리 토크]

"진짜?"
눈을 다시 비볐다. 얼마전 여느 때처럼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이메일을 살피던 중이었다. '긴급/버버리의 크리스토퍼 베일리, 사임 발표하다.' 17년간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으며 지루한 옷에서 갖고 싶은 브랜드로 완벽히 탈바꿈시켜버린 그가 떠난다니. '가짜 뉴스'라고 믿고 싶을 정도였다. 남자 친구가 돌연히 "나랑 헤어져"라는 폭탄 선언을 해버린 듯했다.
물론 조짐이 보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지난해 매출이 소폭 하락하며 6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했다는 뉴스가 마음에 걸렸던 터였다. 베일리는 단순히 디자이너가 아니다. 예술 감각과 돈은 같이 갈 수 없다지만 베일리는 3년 전 CEO까지 맡으며 '숫자'에도 탁월한 감각을 보였다. 트렌치 코트와 노바체크 등 영국의 유산이 담긴 브랜드에 영국인의 창의성을 불어넣은, 영국적 브랜드의 얼굴 그 자체였다.
이제야 고백하자면 베일리가 내놓은 '버버리 프로섬' 옷이 어찌나 탐나고 좋아 보이던지, 단 한 벌 남은 지난 시즌 파격가 세일 제품을 손에 넣기 위해 주말 새벽부터 일어나 줄 선 경험이 있다. 그 트렌치코트가 월급으로는 감당하기 부담스러웠고, 꼭 입고는 싶어 집에는 "운동 간다"고 얘기하고 뛰쳐나왔다. 굳이 '자기 변호'를 더하자면, 그 상표 옷을 입어보지 않고 그 디자이너와 대화하고 그 디자이너 작품에 대해 평가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는 평소 지론 때문이기도 했다. '일시불'로 끊는 호기 한번 누려보고 싶었지만 역시나 덜덜 떨며 12개월 할부로 품 안에 넣은 그 '작품'은 5년여 동안 두세 번 입고 현재 옷장에 고이 모셔져 있다. 트렌치코트가 그렇듯 입을 만하면 추워지는 데다 평범한 트렌치가 아닌, 온갖 러플과 각종 장식이 특이한 제품이어서 "파티 가나?" 하는 소리를 매번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자체로 좋았다. 내겐 베일리가 앤디 워홀이었고 마크 로스코였다.
그동안 베일리가 보여준 건 그야말로 '마법'이었다. 물론 트렌치코트를 입은 남성은, 때로는 관능적이고 지적이며 낭만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 '카사블랑카'에서 중절모에 트렌치코트를 입고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험프리 보가트를 떠올려보라. 기억을 좀 더 더듬어 보자면 TV 뉴스 해외 특파원들의 단골 의상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중년의 교복'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랬던 브랜드에 베일리는 '젊음'을 불어넣었다. 광택감 있는 원단에 핑크, 에메랄드 등 종전 베이지나 남색을 벗어나 컬러풀한 색채를 입기도 하고, 니트와 타탄체크 등 서로 다른 소재와 결합했다. 군대 스타일을 강조한 작품은 '밀리터리 룩'의 전형으로 보이며 유행을 주도했고, 징을 박은 제품부터 빅사이즈 가방 등 버버리에서 선보이면 다른 브랜드에서도 차차 비슷한 스타일을 선보였다. '지금 보고 바로 사기(see now buy now)' 트렌드를 주도했고, '아트 오브 트렌치'라는 사이트로 '디지털 럭셔리 마케팅'의 최전선을 걷기도 했다. 현재 케어링 그룹을 '가장 핫한' 패션계 제왕으로 이끌고 있는 구찌의 알레산드로 미켈레나 발렌시아가의 뎀나 바잘리아 등 '천재'로 불린 이는 많지만 베일리만큼 영리하게 자국의 자산을 세상에 각인한 '천재'는 드물어 보인다.
하지만 최근 며칠간 '소동'처럼 일었던 각종 뉴스를 보면 역시 사람은 사람으로 잊히나 보다. 현재 셀린을 가장 세련된 브랜드로 탈바꿈시킨 피비 파일로가 '넥스트 디자이너'가 된다는 이야기가 한참 돌더니, 로에베를 혁신한 또 다른 천재 조너선 앤더슨도 물망에 오른단다. 현재 패션계는 각종 루머가 판친다. 업계 관계자는 "파이낸셜타임스 등 해외 언론에서 보도는 쏟아지고 있지만 아직은 추측성"이라며 "그렇게 주목받았다가 제3의 인물이 등장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게 바로 패션계라면서. 인터넷 댓글을 봤다. 베일리의 사임에 눈물짓던 이들이 외쳤다. "피비라니! 조너선이라니! 버버리 당장 사야지!"
눈을 다시 비볐다. 얼마전 여느 때처럼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이메일을 살피던 중이었다. '긴급/버버리의 크리스토퍼 베일리, 사임 발표하다.' 17년간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으며 지루한 옷에서 갖고 싶은 브랜드로 완벽히 탈바꿈시켜버린 그가 떠난다니. '가짜 뉴스'라고 믿고 싶을 정도였다. 남자 친구가 돌연히 "나랑 헤어져"라는 폭탄 선언을 해버린 듯했다.
물론 조짐이 보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지난해 매출이 소폭 하락하며 6년 만에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했다는 뉴스가 마음에 걸렸던 터였다. 베일리는 단순히 디자이너가 아니다. 예술 감각과 돈은 같이 갈 수 없다지만 베일리는 3년 전 CEO까지 맡으며 '숫자'에도 탁월한 감각을 보였다. 트렌치 코트와 노바체크 등 영국의 유산이 담긴 브랜드에 영국인의 창의성을 불어넣은, 영국적 브랜드의 얼굴 그 자체였다.
이제야 고백하자면 베일리가 내놓은 '버버리 프로섬' 옷이 어찌나 탐나고 좋아 보이던지, 단 한 벌 남은 지난 시즌 파격가 세일 제품을 손에 넣기 위해 주말 새벽부터 일어나 줄 선 경험이 있다. 그 트렌치코트가 월급으로는 감당하기 부담스러웠고, 꼭 입고는 싶어 집에는 "운동 간다"고 얘기하고 뛰쳐나왔다. 굳이 '자기 변호'를 더하자면, 그 상표 옷을 입어보지 않고 그 디자이너와 대화하고 그 디자이너 작품에 대해 평가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는 평소 지론 때문이기도 했다. '일시불'로 끊는 호기 한번 누려보고 싶었지만 역시나 덜덜 떨며 12개월 할부로 품 안에 넣은 그 '작품'은 5년여 동안 두세 번 입고 현재 옷장에 고이 모셔져 있다. 트렌치코트가 그렇듯 입을 만하면 추워지는 데다 평범한 트렌치가 아닌, 온갖 러플과 각종 장식이 특이한 제품이어서 "파티 가나?" 하는 소리를 매번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 자체로 좋았다. 내겐 베일리가 앤디 워홀이었고 마크 로스코였다.
그동안 베일리가 보여준 건 그야말로 '마법'이었다. 물론 트렌치코트를 입은 남성은, 때로는 관능적이고 지적이며 낭만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 '카사블랑카'에서 중절모에 트렌치코트를 입고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험프리 보가트를 떠올려보라. 기억을 좀 더 더듬어 보자면 TV 뉴스 해외 특파원들의 단골 의상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중년의 교복'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랬던 브랜드에 베일리는 '젊음'을 불어넣었다. 광택감 있는 원단에 핑크, 에메랄드 등 종전 베이지나 남색을 벗어나 컬러풀한 색채를 입기도 하고, 니트와 타탄체크 등 서로 다른 소재와 결합했다. 군대 스타일을 강조한 작품은 '밀리터리 룩'의 전형으로 보이며 유행을 주도했고, 징을 박은 제품부터 빅사이즈 가방 등 버버리에서 선보이면 다른 브랜드에서도 차차 비슷한 스타일을 선보였다. '지금 보고 바로 사기(see now buy now)' 트렌드를 주도했고, '아트 오브 트렌치'라는 사이트로 '디지털 럭셔리 마케팅'의 최전선을 걷기도 했다. 현재 케어링 그룹을 '가장 핫한' 패션계 제왕으로 이끌고 있는 구찌의 알레산드로 미켈레나 발렌시아가의 뎀나 바잘리아 등 '천재'로 불린 이는 많지만 베일리만큼 영리하게 자국의 자산을 세상에 각인한 '천재'는 드물어 보인다.
하지만 최근 며칠간 '소동'처럼 일었던 각종 뉴스를 보면 역시 사람은 사람으로 잊히나 보다. 현재 셀린을 가장 세련된 브랜드로 탈바꿈시킨 피비 파일로가 '넥스트 디자이너'가 된다는 이야기가 한참 돌더니, 로에베를 혁신한 또 다른 천재 조너선 앤더슨도 물망에 오른단다. 현재 패션계는 각종 루머가 판친다. 업계 관계자는 "파이낸셜타임스 등 해외 언론에서 보도는 쏟아지고 있지만 아직은 추측성"이라며 "그렇게 주목받았다가 제3의 인물이 등장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게 바로 패션계라면서. 인터넷 댓글을 봤다. 베일리의 사임에 눈물짓던 이들이 외쳤다. "피비라니! 조너선이라니! 버버리 당장 사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