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한번 베낄 테면 베껴봐
입력 2018.06.14 14:58

[최보윤 기자의 글로벌 마켓]

다이어트 프라다 인스타그램
명품 브랜드 본사 관계자들이 한국에 오면 한번쯤은 꼭 해보는 일이 무얼까. 바로 가짜 유통 점검이다. '짝퉁 천국'이라는 오명은 쉽게 벗겨지지 않는 문신 같은 건가 보다. 경찰과 함께 가짜를 적발하고, 소송도 불사하지 않는다. 브랜드 관리를 위해 피할 수 없는 단계다. 물론 일부는 '수사'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도 말한다. 분명 '베꼈다'며 화를 내야 할 장면인데도 내심 속으로는 웃으면서 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짝퉁은 곧 트렌드이기 때문이다. 그 제품이 인기가 있다는 척도를 말한다. 업계에서 '깔렸다'는 건 브랜드 인기가 치솟는다는 은어나 마찬가지다. 일부 브랜드 제품은 국내에 정식 입고되기도 전에 온·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깔리기도 한다. 디자인이 너무 훌륭해 싼 맛에 마구 골랐다가 해외 브랜드의 카피제품인 걸 알고 속이 탔다는 이들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창피해서 밖에 나가 입고 다닐 수도 없고, 돈은 썼고, '내 취향도 괜찮군'이라고 말하기엔 양심이 울고 있다.

하지만 명품끼리도 베끼는 게 있을까? '명품 경찰'이란 게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독창성이라는 기준은 무얼까. 재단과 원단이 한정된 이곳에서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디자인을 창조한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 전혀 굴복하지 않을 이들에게 최근 지각변동이 생겼다. 일명 '카피캣 사냥꾼'이라고 불리는 한 인스타그램 계정 때문이다. 주인공은 '다이어트 프라다(Diet Prada)'. 2014년부터 시작된 이들에 레이더에 처음 걸린 건 라프 시몬스. 그가 2015가을겨울 디올컬렉션에서 선보인 코트가 2014년 가을겨울 프라다 컬렉션을 베꼈다는 포스트다. 프라다는 코트 깃에 레드 컬러 배색이 더해진 카멜 코트를 선보였고, 이를 디올에선 노란 배색으로 바꿨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둘이 닮아 보이는 것이 없었지만 목 깃 부분에 칼라 포인트를 준다는 아이디어 그 자체의 창의성에 집중한 것이다. 최근 업계서 가장 뜨는 스타였던 조나단 앤더슨도 그들의 '수사망(?)'을 피해갈 수 없었다. 그의 피어스 백은 에르메스를 그대로 베꼈다고 해서 사람들의 입을 시끌시끌 거리게 했다. 두 개의 구멍에 메탈 링을 꿰어놓은 디자인이다. 전체적으로는 달라 보일 수 있어도 가장 핵심이 되는 디테일을 유사하게 만들었다는 것에서 말 그대로 '딱 걸렸다'. 재밌는 건 이 포스트에 디자이너 조나단 앤더슨도 'like'를 눌렀다는 것.

53만7000여명의 팔로워를 모으며 팬들의 열광을 일으킨 '다이어트 프라다'의 계정 운영자는 시카고 보자르 아트 인스티튜트 졸업생인 토리리우와 린제이 스카일러. 패션계에 넘나드는 '영감'이라는 단어에 대해 따끔한 일침은 그동안 '알았지만 말하기 어려웠던' 금단의 결계를 넘은 것과 다름없었다. 이들은 최근 미우미우 패션쇼 맨 앞자리에 초청됐고, 구찌 인스타그램 스토리에도 등장하는 등 패션계 스타가 됐다. 이들은 해외 매체에 "크리틱 비즈니스(critic business)를 계발해 디자이너의 창의성이 더욱 존중받을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고발하는 자를 아우르는 브랜드, 어쩌면 이들이 노린 건 노이즈 마케팅일지도 모르겠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재활원에 수시로 드나들면서 파파라치를 모았던 것처럼 어찌 됐던 주목받고 싶은 욕망이다. 가짜가 곧 트렌드가 되고, 스타 디자이너가 하루아침에 잊히는 요즘 세상에 한 번이라도 사람들의 이름에 오르내리는 것 자체가 중요해진다. 누가 범죄자고 누가 사냥꾼인가를 구분하는 건 어쩌면 의미 없는 놀음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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