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그 자체가 시간의 역사… 혁신으로 기존에 없던 시계를 보여주다
입력 2018.04.13 03:00

오데마 피게 / AUDEMARS PIGU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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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위스 르 브라쉬스에 위치한 오데마 피게 매뉴팩처.
스위스 제네바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반쯤 달렸을까. 울창한 수풀 사이를 헤치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닿은 스위스의 작은 마을 르 브라쉬스(Le Brassus). 프랑스와 스위스에 걸쳐있는 쥐라 산맥의 한 골짜기인 발레 드 주(Vallée de Joux)에 자리한 그곳은 여느 스위스 관광지 풍경과 다름없어 보였다. 만년설이 소담스럽게 산등성이를 뒤덮었고, 스위스 하면 떠오르는 샬레(작은 오두막집)가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새 소리가 사람 목소리보다 더 크게 들릴 것 같은 고요함은 시간도 흐르지 않을 듯한 풍경 속으로 방문객을 인도했다.

지난 3월 '세계에서 가장 정교하고 복잡한 시계'라고 불리는 오데마 피게 본사를 찾았다. 오데마 피게는 젊은 시계장인 쥴스 루이스 오데마와 에드워드 오거스트 피게의 만남으로 시작됐다. 1875년 브랜드가 창립된 이래 지금까지 창립자 가문이 4대째 단 한 번도 명맥이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같은 장소에서 전통의 역사를 지속해나가고 있다. 럭셔리 시계 중에서도 독립된 회사로 유일하게 창립자가 경영을 잇고 있다.

오데마 피게의 역사는 마치 스위스 시계의 역사를 바라보는 듯하다. 위기를 기회로 삼는 대담함과 도전 정신이 고비 때 마다 발휘됐다. 스위스 시계 산업 발전이 프랑스 종교 박해가 낳은 산물임을 두고 보면 더욱 흥미롭다. 일본의 저가 쿼츠 생산으로 스위스 시계 업체들이 부도와 파산으로 침몰 일보 직전일 때 오데마 피게는 역발상으로 럭셔리스포츠 시계 분야를 확장했다. 오데마 피게의 초복잡 부품을 제작하는 전설적인 워치메이커 줄리오 빠삐를 독점하지 않는 방식으로 오데마 피게 사람으로 만들어버렸다. 전통이 어떻게 혁신으로 이어지는지 그 맥을 정확히 짚고 있었다. 박물관과 아카이브 보존실 등으로 쓰이는 본사 건물은 과거 모습 그대로 외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외형뿐 아니라 143년 전 그때처럼 시계 장인(워치 메이커)들은 0.01㎜의 부품과 씨름하며 정교함에 예술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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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복원 아틀리에에서 시계 장인들이 무브먼트를 측정하는 모습. 3 르노&빠삐 매뉴팩처를 이끄는 줄리오 빠삐.
◇작품 그 자체가 시간의 역사

박물관에 들어서면 오데마 피게의 역사가 시작되기 이전 1740년대 제품들도 볼 수 있다. 빈티지 피스부터 시작해 최근 작품까지 전시돼 있다. 빌라 드 주 지역엔 흔히 세계 3대 시계 중 하나로 꼽는 오데마 피게를 비롯해 블랑팡, 예거 르 쿨트르 같은 유명 브랜드 매뉴팩처가 모여 있다.

이 작은 동네에 세계적인 시계 브랜드 공방이 모여 있는 건 발레 드 주 계곡의 험난한 지형 덕에 피난처 삼기에 제격이었기 때문이다. 16세기 말 종교 박해를 피해 프랑스 위그노 교도들이 스위스에 피신하면서 이 지역에 자리 잡게 됐다. 빈손이었지만 정밀한 시계를 만드는 기술이 있었던 이들에게 스위스인들은 기술을 배워나갔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던 스위스가 손바닥의 절반도 안 되는 시계로 고부가가치 소득을 올리게 된 것이다. 프랑스의 예술성과 독일의 정확성이 완벽하게 균형을 이룬 것이 스위스 시계라는 말도 있다. 그러한 역사를 온몸으로 보여주듯 박물관에는 18세기 미니어처 페인팅 작품, 첫 회중시계, 여성용 초소형 미닛 리피터 손목시계, 수집가들의 마음을 설레게 할 빈티지 시계와 오데마 피게의 상징이기도 한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워치가 시선을 끈다. 유명 워치 메이커였던 블랑팡이나 브레게와 교류한 흔적도 볼 수 있다.

◇도전의 미학…세상에 없던 시계, 로열 오크

박물관에서 역시나 눈을 사로잡는 건 1972년 탄생한 로열 오크(Royal Oak)의 오리지널 모델이다. 최초의 스테인리스 스틸 럭셔리 스포츠 워치인 로열 오크는 현재 럭셔리 스포츠 시계 시장의 70% 정도를 차지한다. "기존에 없던 시계"를 보여주자는 오데마 피게의 주문에 세계적인 시계 디자이너인 제럴드 젠타(1931~2011)가 설계했다. 젠타는 로열 오크뿐 아니라 파텍 필립의 노틸러스, 불가리의 불가리 불가리 등 시계사에 이름을 남길만한 작품을 줄줄이 내놓은 전설적인 디자이너다. 1970년대 쿼츠 시계 파동으로 스위스 인력 절반 이상이 실업자가 되고 기계식 시계의 시대가 끝났다고들 푸념했을 때 오데마 피게는 오히려 공격적이었다. 스테인리스 스틸을 소재로 택해 골드나 주얼리 시계 트렌드에 반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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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2008년 말 완성한 매뉴팩처 데 포르주에서 부품조립에 한창인 젊은 시계 장인.
로열 오크는 시계 베젤에 최초로 8각형을 도입한 옥타곤 형태다. 8개의 나사로 시계 앞뒷면을 일체형으로 고정한다. 어떤 충격에서도 절대 분해 되지 않는다고 한다. 6시 방향의 로고, 다이얼 위 올려진 작은 사각 문양인 타피스리, 빛을 발하는 인덱스에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돼 편안한 착용감을 주는 브레이슬릿까지 많은 럭셔리 스포츠 시계의 교과서로 불린다. 도전은 이어져 세계 최초로 티타늄이나 카본의 파격적인 소재를 쓰기도 했다. 익스트림 스포츠를 표방하는 '로열 오크 오프쇼어' 컬렉션 역시 큰 인기인데 올해 탄생 25주년을 맞아 로열 오크 오프쇼어 리미티드 에디션 등이 선보인다.

◇기록은 혁신을 낳는다

143년 전 창업자들이 시계를 만들었던 2층 공방은 지금도 제작을 위한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시계 장인들은 손톱 크기도 안되는 작은 부품들을 다듬고 매만져 조립했다. 재채기라도 하면 부품이 날아갈 듯해 숨소리 한번 크게 내기 미안해졌다. 시계 내부를 장식하는 데코레이션 장인들은 시계가 단순히 시간을 보여주는 기계가 아닌 예술품으로 분류될 수 있게 했다. 금속 단면을 기계로 깎아내면 날카로운 각도가 살지 않아 어느 정도 '흉내'만 낼 수 있을 뿐이다. 4가지 종류의 사포와 회양목으로 만든 끌을 이용해 직접 손으로 갈고 또 갈아서 보석처럼 빛나는 단면을 완성한다. 이러한 새틴 마감과 폴리싱으로 고도의 광택을 주는 데 보통 데코레이션만 300시간에 조립이 40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장인들의 섬세한 기술도 눈길이지만 오랜 시간을 들이는 만큼 그 인내의 세월도 짐작 가능하다.

시계의 생명을 되살려놓는 복원실로 향했다. 투르비용 제작을 하는 이들과 비슷하게 복원실 역시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만큼 수십년 경력의 장인들이 부품을 조심스레 다룬다. '신참' 워치 메이커도 거의 10년 정도의 경력이 있어야 복원실 문턱을 넘을 수 있다.

5 오데마 피게 르 브라쉬스 본사 복원실 금고. 1875년부터 지금까지 모든 시계의 무브먼트를 담아 보관했다.
5 오데마 피게 르 브라쉬스 본사 복원실 금고. 1875년부터 지금까지 모든 시계의 무브먼트를 담아 보관했다. 6 2018년 출시된 리에디션 로열 오크 오프쇼어./오데마 피게 제공
1875년 초창기 무브먼트 자료에서 최근까지 금고 속에 모든 게 보관돼 있다. 40년 가까운 경력의 복원실 장인이 금고의 빗장을 열고 설명해준다. 일일이 수기로 쓰여 있는데, 요즘도 직접 손으로 작성한다고 한다. 100년쯤 된 '장부'도 있는데 자세한 설계도가 기본이다. 시계의 직경, 무브먼트 번호, 케이스 등 기본 정보가 들어 있다. 어느 지점에서 팔았는지까지 적혀 있다. 이들 자료는 몇 년 전부터 디지털 전환 작업도 해놓아 디지털 아카이브로도 보관돼 있다. 담당 가이드 설명에 따르면 과거의 그 어떤 앤틱 워치 혹은 빈티지 워치나 이 지역에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회사의 시계더라도 복원과 보존을 할 수 있는 얼마 되지 않는 매뉴팩처 중 하나라고 한다. 고도의 기술력과 풍부한 경험을 갖춘 시계장인들 중 극소수만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계들을 다룰 수 있다. 만약 부품이 수리가 불가능한 경우, 복원 전문가들은 전통적인 공법과 고유의 도구를 사용해 새로운 부품들을 제작한다. 의뢰인에겐 견적서와 함께 이 제품의 원형과 어떤 방식으로 수리했는지 등 마치 족보 같은 책자도 제공된다. 어떤 제품은 부품이 1160개나 있는 컴플리케이션 워치였는데 수년간의 공을 들여 원형 그대로 되살려놨다. 울트라 슬림 회중시계 등 잘 보수해놓은 헤리티지 시계 역시 복원실에서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기록에서 전통은 이어지고 이는 혁신을 낳는다. 오데마 피게의 브랜드 철학 '전통성, 혁신성, 우수성'이 매뉴팩처 곳곳에 깃들여 있다.

◇미래로 향하는 새로운 박물관

오데마 피게는 지난 2008년 '매뉴팩처 데 포르주'를 새롭게 열었다. 환경 보호 등에 적극적인 오데마 피게 재단의 철학을 반영한 친환경 건물이다. 재활용 가능한 무독성 소재만 이용했다. 시계 제작도 이뤄지지만 R&D에 중점적으로 투자한다. 다음 세대를 위한 시계에 대한 연구다. 젊은 워치 메이커들도 상당수 보였는데 자신이 맡은 부품만 조립하는 이들이었다. 보통 컴플리케이션 워치에 200여개가 넘는 부품이 들어가니 시계 완제품을 제작할 수 있는 워치 메이커들의 경력을 짐작 가능하다. 공방에 들어가기 전엔 위생 덧신과 재킷을 입는다. 외부의 먼지가 들어오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다. 시계 내부에 먼지라도 들어가면 투명성에서도 문제지만 오작동을 일으킬 수도 있다. 집진 시설도 갖추고 있고, 시계 장인들은 현미경 같은 확대경으로 시계 내부를 정밀하게 들여다 본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브먼트 중 하나로 불리는 칼리브르 2120.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브먼트 중 하나로 불리는 칼리브르 2120.
르 브라쉬스에서 차로 한 시간 가까이에 있는 스위스 르 로클(Le Locle)의 매뉴팩처 '르노&빠삐'는 "외형에만 신경 쓰면 기업의 정신을 잃는다"는 오데마 피게의 모토가 아로새겨진 곳이다. 오데마 피게의 컴플리케이션이 제작되는 르노 빠삐의 줄리오 빠삐 대표는 시계업계에선 살아있는 신의 존재로 불린다. 그가 워치메이킹 학교에 다니던 1970~80년대는 쿼츠 파동으로 실업자가 3만여명에 이르는 암울한 시대. 위기는 기회를 낳았다. 당시 학교에 재학한 유일한 학생이었던 그는 4명의 선생님으로부터 단독 과외를 받으며 컴플리케이션, 스켈레톤 워치 등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됐다. 오데마 피게에서 잠시 일하다 도미닉 르노와 함께 르노&빠삐 회사를 만든 그는 '원하는 일을 하겠다'는 조건으로 오데마 피게 그룹에 다시 속하게 된다. 오데마 피게 부품뿐만 아니라 리처드 밀, 샤넬 등 유명 시계 부품도 제작한다. 보통 지분을 사들이면 독점적으로 사용하기 마련이다. '나만을 위해 존재한다'는 아집을 버리고, 스위스 시계 산업 발전을 위해 통큰 결정을 한 것이다. 수십개의 특허도 갖고 있는데 스위스 로잔 공대와 수년간 협업한 '로열 오크 컨셉 슈퍼소네리'가 대표적이다. 3개의 특허 기술력이 담겼는데 고도의 선명함이 담긴 미닛 리피터였다. 멀리 떨어지면 더욱 생생하게 소리가 들렸는데 아이의 울음소리에 사람들이 가장 빠르게 반응한다는 뇌인지구조를 시계에 반영했다. 40㎜내외 지름으로 손목에 올라가는 사이즈 정도지만 그 작은 원형 판 안에서 세계적인 기술이 집약돼 있었다.

오데마 피게는 이제 미래로 향한다. 지난 2014년 저명한 건축회사 BIG에 의뢰해 새로운 뮤지엄을 설계했다. 2400㎡(약 727평) 규모의 나선형 형태의 건물로 '창립자의 집'이라는 뜻인 '메종 드 퐁다테 (Maison des Fondateurs)'라는 이름이 붙었다. 250여년의 스위스 시계 산업 역사와 브랜드 유산의 일부를 포함한 1300피스 이상의 컬렉션이 포함될 예정이다. 오데마 피게의 자스민 오데마 회장은 "독립적인 브랜드의 정신과 진취적인 철학을 반영해 독창적인 시대정신을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데마피게 1875년~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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